이명박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주요 경제정책으로 추진했던 감세정책을 포기하고, 정권말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늘리는 '부자증세'로 급선회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재벌규제를 전면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가 오는 12월 대선 최대 이슈로 떠오른 만큼, 정권 재창출을 위해 MB노믹스의 핵심이었던 감세기조를 과감히 내던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일 발표한 '2012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내년부터 대기업 최저한세율을 1%p 인상하고,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을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하향조정하기로 결정하는 등 각종 증세 방안을 마련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세법개정안에 대해 "전반적인 감세기조는 유지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 이른바 '부자증세'라고 말하는 방향이 아니다"라며 "감세기조의 전면적인 수정이 아니라 소득과세 취약점을 보완하고 공평과세를 정립하기 위한 미세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조세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세법개정안이 대기업과 일부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삼은 부자증세 방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유로존 재정위기 악화 등으로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업에 대한 갑작스런 증세 정책은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 소장(前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권 초기의 정책방향이 완전히 실종됐다"며 "증세를 부유층에 하는 것은 좋지만 대기업을 부유층과 같은 범주에 넣는 것은 기업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인천대학교 교수)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인세 조정은 단순히 세수확보만을 고려해서는 안된다"며 "기업 활동과 관련한 국제간 비교를 통해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도 "세부담 증대는 결국 기업들의 투자여력 및 개인 소비여력을 줄이게 되며, 전반적으로 경제활력을 떨어뜨린다"며 "최근 유럽발 경제위기로 수출이 둔화되고 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증세조치는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세법개정안이 대기업과 고소득자들의 세부담을 늘리고, 중소기업과 서민층의 세제혜택은 확대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심태섭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권초 정책기조를 기준으로 현정부 마지막 세제개편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올해 세법개정안은 중소기업과 저소득자 세부담은 감면하는 방향으로 마련돼 비교적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Q.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 대기업 및 고소득자 세부담을 다소 높이는 '부자증세' 방안을 마련했다. MB노믹스 핵심인 감세기조를 포기한 세법개정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이하 현진권) = 정권 초기의 정책방향이 완전히 실종됐다. 정권은 정책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는데, 이번 세법개정안은 정권 막바지 정치 타협의 산물이다.
증세를 부유층에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대기업을 부유층과 같은 범주에 넣는 것은 기업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은 경제성장의 축이란 인식이 정권 초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야당 등에서 주장하는 논조를 따르고 있다.
세계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증세정책은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이하 홍기용) = 정치권에서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복지재원 확보의 일환으로 대기업·고소득자 과표구간 및 세율을 조정하려는 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복지지출을 대폭 확대하고, 재원 확보를 목적으로 수시로 세제개편 방향을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 등을 감안해 복지지출 확대를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세제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하 오윤) = 이번 세법개정안에 실제 획기적인 부자증세 방안은 없다. 부자증세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정부의 재정수요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갖춰지면 전체적인 세율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위한 수단으로서 조세를 활용하거나, 정책을 표방하는 것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이하 유환익) = 세부담 증대는 결국 기업들의 투자여력과 개인들의 소비여력을 줄인다. 전반적으로 경제활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최근 유럽발 경제위기로 수출이 둔화되고 경제성장률도 떨어지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증세 조치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특히 대기업 최저한세율 인상은 사실상 법인세 인상이다. 기업의 투자촉진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는 국제적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심태섭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이하 심태섭) = 현 정부의 마지막 세제개편을 정권초기 내세웠던 정책기조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보다는 경기침체, 소득양극화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는 현 시점에서 이번 세법개정안이 적절한 지를 판단해야 한다.
올해 세법개정안은 대기업·고소득자 세부담을 증가시키고, 중소기업·저소득자 세부담은 감면하는 방향으로 마련돼 비교적 긍정적이다. 다만 정권말 특성상 세제당국에서 꼭 필요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소득세 과세구간 조정 등을 개정안에 포함시키지 않은 점은 아쉽다.
Q. 법인세율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대기업 최저한세율을 기존 14%에서 15%로 인상했다. 고용창출세액공제 기본공제율도 1%p 내리는 등 기업들의 세 부담이 많아졌는데, 대기업 과세 강화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홍기용 = 기업에 대한 과세는 신중해야 한다. 법인세는 우리나라만 증세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나라들의 추이를 살펴 조정해야 한다. 이 점에서 법인세 중심의 세수증대는 기업을 어렵게 해 국가경쟁력을 떨어드릴 수 있다는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기업의 소득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배당된다는 면에서 기업과세에 너무 치중하기보다는 개인과세 측면에서 보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현진권 = 대기업을 부유층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다. 재정학에선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은 국민들이 부담하는 것으로 분명히 설명하고 있으며, 그런 논리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법인세율 체계는 단일세율로 가고 있다.
따라서 법인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기능달성은 미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은 특정 재벌인에 부담된다는 인식 하에 누진구조를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개방화 경제에서 세율 낮추기 경쟁이 치열한 국제환경에서 법인세 부담을 높이는 것은 이 시대의 정책규범을 모르는 것이며, 이는 반드시 경제퇴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심태섭 = 대기업에 대한 적정한 세부담 정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에 대한 세부담 감소는 그 감소분만큼을 추가적인 투자 등으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경기침체나 여러 불투명성 등으로 투자 등에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그동안 세부담 감소만큼 추가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번 세제개편안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점으로 지적한 최저한세의 경우, 적용대상이 과세표준 1000억원 이상인 기업으로 실제 적용대상이 20여 개에 지나지 않아, 대기업이 받는 세금감면 혜택과 비교하면 큰 부담이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용창출세액 기본공제율의 인하는 무조건 세금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경우만 세금혜택을 부여하는 측면으로 개정된 것이기에, 해당 규정을 정상화한 관점에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Q. 올해 세법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5년 동안 1조6600억원의 세수증가가 예상된다. 세수증가 폭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균형재정 달성과 복지수요 확충에 미칠 효과는.
홍기용 = 세법개정안을 보면 향후 5년간 예상되는 세수증가 효과에서 법인세가 1조2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인세 조정은 단순히 세수확보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기업 활동과 관련된 국제 비교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자금조달을 쉽게 하고,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복지지출 수요가 증가해 세수확보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국내외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세수확충은 쉽지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주장해온 복지지출 증가에만 맞춘 대폭적인 세수증대는 그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현진권 = 세법개정안은 세수증대 효과보다는 세수 중립적인 입장에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1조6000억원의 세수증가 예상액의 약 70% 정도가 법인세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세계경제 환경이 어려워 기업에 감세혜택을 주는 것이 세계적인 추이다. 오히려 기업들의 세부담을 높인다면 대외경쟁력은 더 떨어질 것이다. 또한 증세효과는 특별히 나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정책만 확대할 경우 재정적자 환경을 만들어 줄 확률이 매우 크다.
오윤 = 이번 세법개정안은 세수증가 효과가 미미하다. 하지만 지출을 합리화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조세수입만 늘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만약 꼭 필요한 재원이라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늘리는 방향으로 세수입을 확보하는 것이 타당하다.
심태섭 = 많은 조세전문가들이 향후 균형재정 달성과 복지재정 문제를 제기하며, 이번 세법개정안의 세수증대 효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세수효과에 대한 예측과 판단은 잠시 미뤄둬야 한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소득세 과세구간 조정 등에 대해 국회가 논의 과정을 거쳐 결정을 내린 후에나 이번 개편안의 효과를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재정건전성 제고 방안을 많이 마련했다. 세원투명성 제고, 비과세·감면 정비 등이 대표적이다. 균형재정 달성은 세입뿐만 아니라 세출 측면의 관리도 필요하다. 복지수요 등 세출 측면의 완급 조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