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필요한 정부, 고소득·대기업 증세로 곳간 '충전'

세법개정 세수효과, 5년간 1조6600억원↑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세법개정안은 연말 대선(大選)을 앞둔 정치권과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대권 이슈로 급부상한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 부담을 다소 높인 반면, 침체된 경기상황 등을 고려해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해선 감세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등 당초 올해 세법개정안의 주요 이슈로 부각됐던 부분에 대해선 정치적 부담감을 고려해 '차기정부'로 바통을 넘기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8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개최된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소득세, 법인세법 등을 포함한 17개 세법개정안을 확정 발표하고,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대기업 법인세 '증세' 모드 전환= 우선 그동안 정치권 등에서 과도한 세액공제 특혜문제가 거론된 일부 대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폭이 축소될 전망이다.

정부는 거대 감면제도 중 하나인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前 임시투자세액공제)의 기본공제율(수도권 대기업 3%, 수도권 밖 대기업 4%, 중소기업 4%) 부분을 조정, 대기업의 경우 1%p씩 내리되, 고용증가에 따른 추가공제혜택 비율을 기존 2%에서 3%로 1%p 올렸다.

다만 과거 고용 감소 시 아예 배제됐던 기본공제 혜택은 업계 의견을 수렴해서 혜택을 부여토록 했다. 고용창출공제제도 개선에 따른 세수증가분은 약 28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기업들의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는 과표 1000억원 이상 기업에 대한 최저한세율(연간 납부해야 되는 법인세 최소한도)을 기존 14%에서 15%로 1%p 높이기로 했다. 이에 따른 연간 세수증가분은 11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2조원 이상의 감면혜택이 부여됐던 R&D 세액공제제도는 지원기간을 3년간 연장하되, 세부 감면기준을 보완해 특정 기업에 대상 감면혜택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로 했다.

다만 ▲국내복귀 U턴 기업에 대한 소득·법인세 감면 확대 ▲중견기업 R&D세액공제 우대 ▲중소기업 특별 세액공제 연장 ▲창업중소기업 세제지원 확대 등 경기 진작을 위한 중견·중소기업 관련 감면제도는 유지·확대할 계획이다.

□ 고소득 금융자산가 등 세부담 늘어난다 = 고소득 금융자산가에 대한 세 부담은 늘어날 전망. 정부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기존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내려 과세대상을 확대하고, 주식양도차익 과세 대상인 대주주 범위도 지분율 2%, 시가총액 7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그동안 비과세 영역이었던 주식 파생상품 시장에도 거래세가 전격 도입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선물은 0.001%, 옵션은 0.01%의 세율이 적용된다. 다만 정부는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6년부터 전면 과세로 전환할 예정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인하에 따른 세수효과는 1200억원, 파생상품거래세 도입에 따른 세수효과는 연간 1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정부는 또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규정을 손질, 증여재산 범위에 경제적 이익을 추가시켜 물건 등 외형상품 거래는 물론 용역 등 무형의 거래에 따른 이익에도 과세가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외국인, 재외국민 등 비거주자에 대한 증여세 과세대상도 확대되며, 명품백 등 고가가방(수입신고·출고가격 200만원 초과)에 대해서도 개별소비세가 새롭게 과세되는 등 고소득층에 대한 세부담은 예전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차기정권 미뤄 = 올해 세법개정안 주요 이슈 중 하나였던 소득세 과표 구간 조정문제와 관련해선 특별히 정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정치권은 3억원 초과 소득구간에 38%의 세율을 적용하는 이른바 '한국판 버핏세' 개정안을 전격 통과시켰는데, 기존 과표 구간을 고려할 때 적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당초 근로소득공제율 등 소득세 체계 내의 전반적인 비과세 감면제도 조정하고, 기존 과표 구간까지 끌어올려 세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 세법개정안이 이번 정부 마지막 발표이며, 연말 대선을 앞둔 만큼 정치적인 부담감을 고려해 따로 정부 개정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세법개정안 사전 브리핑에서 "(소득세 과표조정 문제는)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고 실무진에서도 수 백번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세수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근본적인 개편안을 마련하려면 비과세 감면제도의 대폭 축소·정비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정치일정(대선)을 앞둔 정기국회에서 실제 비과세 감면제도의 대폭적인 정비가 가능하겠느냐는 실효성에는 의문이 많이 제기됐다"며 "이번 정부에서 몇 년 뒤에 조세제도까지 안을 내는 것이 다소 무리가 아닌가 하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부는 연말 정기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이 따로 소득세 과표와 관련된 개정안을 제시할 경우, 내부적으로 마련된 점진적인 개정안을 토대로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한편 또 하나의 관심거리였던 종교인 과세문제도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특별히 담기지 않을 전망이다. 별도의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고, 종교계와의 추가협의가 필요한 만큼, 추후 시행령 개정작업을 통해 과세를 추진할 계획이다.

박 장관은 "종교인 납세의무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현실적으로 오랫동안 과세가 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고, 최근 종교계의 자진납세 분위기와 종교 활동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면 과세기술 상 좀 더 고려해야 될 부분이 있다"며 "종교계와 더 협의를 해서 대통령령에 기술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 세법개정 세수효과, 향후 5년간 1조6600억원 = 올해 세법개정을 통해 향후 5년간 총 1조6600억원의 세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연평균 3300억원 수준의 증세효과가 나타나는 셈.

늘어나는 복지수요와 재정건전성 문제로 당초 대대적인 비과세 감면·정비가 예고됐지만, 결국 예년과 마찬가지로 수준의 '미세 조정'에 그쳤다. 박 장관 스스로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로 올해 세법개정 효과를 평가했다.

하지만 세 부담 귀착효과를 보면 '증세타깃'의 쏠림현상이 파악된다. 실제로 올해 세법개정에 따른 1조6600억원 증세효과 가운데 99.8%인 1조6500억원이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집중되고, 서민층과 중소기업은 2400억원 정도 감세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예상보다 적은 수준이나 정부가 당초 감세정책 기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만한 상황.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전반적인 감세기조는 유지한다"면서 "(이번 세법개정안은) 정치권 등에서 말하는 부자증세 방향이 아닌 소득과세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공평과세를 확립하기 위해 미세조정하는 차원"이라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