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대여'는 세금분쟁을 부르는 단골메뉴 중 하나입니다.
본인 이름을 별다른 생각 없이 남에게 빌려줬다가 뒤늦게 거액의 세금폭탄을 맞고, 부랴부랴 과세관청과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한데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지방소재 대학생 A씨도 마음씨 좋은 줄로만 알았던 사장님을 믿고 명의를 빌려줬다가 한 순간에 고액체납자로 몰리게 된 황당한 운명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 '알바생'이 하루아침에 사장님 된 사연 = 자립심 강한 A씨는 본인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도 불사하고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일산에 소재 한 레스토랑에 일자리를 잡게 된 A씨. 그런데 그 가게의 채용조건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레스토랑 실소유자인 B씨가 "세금문제가 복잡하니 좀 도와 달라"며 A씨의 이름으로 가게를 등록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용주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란 사실상 힘든 일. 결국 A씨는 레스토랑 개업일인 2009년 12월경 관할세무서에 본인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게 됩니다.
이후 별 탈(?) 없이 월급을 받았던 A씨. 그동안 번 돈으로 등록금을 마련, 다시 학업에 전념하고자 2011년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장사가 잘 안됐던 레스토랑은 A씨가 복학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 청천벽력 같았던 '세금고지서' = 약 1년 간의 알바생활을 마치고 캠퍼스로 돌아간 A씨. 묵묵히 학업을 이어가던 A씨는 올해 초 국세청으로부터 날아온 한 장의 세금고지서를 받아보고선 두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세금고지서에는 A씨가 도저히 감당하기 벅찬 여러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부가가치세액이 적혀 있었습니다. 더 황당한 사실을 그 돈을 내야하는 납세의무자가 A씨 본인이었다는 사실.
국세청은 "레스토랑 사업주인 A씨가 2010~2011 과세기간, 부가세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며 "A씨 이름의 사업자등록증과 영업신고증이 확인된 만큼. 이 기간 미납세액을 모두 A씨가 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레스토랑 실소유주가 명의대여를 요구해 어쩔 수 없이 빌려준 것일 뿐, 실제 세금납부 의무는 레스토랑을 실제로 운영한 B씨에게 있다"고 반박하며, 조세심판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 심판원 "명의대여 확인…일부 과세 취소" = 양측의 주장을 심리한 심판원은 우선 명의대여가 이뤄진 부분에 대해선 A씨의 주장을 인정했습니다.
심판원은 "심판청구 이후 실질 사업주인 B씨 등이 납부한 체납세금 납부내역서, A씨 명의계좌에 B씨가 입금한 내역, B씨가 A씨 아버지에게 제출한 각서, 실사업자임을 인정한 녹취록, A씨의 등록금 납입내역과 복학사실 등을 고려할 때 단순 명의대여자라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심판원이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A씨 아버지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사단이 벌어지자 A씨 아버지는 한걸음에 서울로 올라가 B씨와 담판을 짓고 사업장 실소유주였다는 녹취록과 각서까지 받아온 것. 각서에는 레스토랑 운영과정에서 발생된 모든 체납액을 B씨가 책임지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또한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도 "A씨도 같이 월급을 받고 일을 했고, 단지 명의를 빌려준 것 뿐"이라고 진술한 부분도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심판원은 "레스토랑의 실질 사업자는 B씨"라며 "국세청이 A씨에게 한 부가세 과세처분은 잘못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과세처분 취소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A씨가 자신에게 부과된 모든 세금을 구제받은 것은 아닙니다. 세금고지서를 받고 우왕좌왕(?) 했기 때문인지 일부 과세처분과 관련해서는 불복청구기간(90일)을 넘겨 불복청구를 제기, 국세기본법 규정에 따라 각하처분이 내려지면서 구제 받지 못한 것입니다.
심판원은 "과세처분 이후 90일 이내에 불복을 제기해야 한다"는 국세기본법을 인용, "2011년 1기 확정분을 제외한 나머지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의 경우 그나마 양심이 있던 B씨가 미납 세금을 모두 대납하겠다고 하면서 비교적 순조롭게 일이 풀린 케이스. 만약 B씨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면서 버텼다면 A씨는 꼼짝없이 심판원이 과세처분을 취소한 부분을 제외한 거액의 세금을 모두 내야 할 처지에 놓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각종 세금송사에 시달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명의대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
주변에서 돈 문제로 친한 친구, 가족 사이도 벌어지는 일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는데, 하물며 이보다 더한 송사(訟事)를 야기할 수 있는 명의대여의 공포는 납세자라면 더욱 더 경계해야 마땅한 일인 듯 합니다.
[참고 심판례: 조심2012중2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