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법정처리 시한 못 지켜
여야 정치권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지만, 마지막까지 제주해군기지 예산안 등 일부 항목을 사이에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새해를 불과 반나절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본회의를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올해 예산지출 규모는 342조5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정치권은 ▲0~5세 영유아 보육비, 양육비 확대지원 ▲대학 반값등록금 지원확대 ▲저소득층 사회보험료 지원확대 등 복지예산을 늘리면서 세출부분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여야는 당초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SOC분야 지출을 줄이는 대신 복지 분야 지출을 100조원대로 늘리는 방안에 합의했다.
여야는 현재 세입과 세출 규모를 맞추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반적인 예산지출 규모는 큰 폭의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31일 기획재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적인 총지출 규모는 당초 정부가 제출한 342조5000억원에서 추가적인 지출이나 감액 없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동안 정치권을 달군 '박근혜 예산' 확보를 위한 추가 국채발행은 사실상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선 정국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될 듯 했던 여야 정치권의 예산안 합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예산 및 중소기업 지원,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 관련 예산지원 금액 등 총 6조원의 증액요구가 불거져 나오면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특히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이 부분에 대한 재원조달을 위해 국채발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자, 민주당은 즉각 반발하며 고소득층, 대기업 증세를 통한 세입확충을 우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정부 한해 세입을 결정짓는 기획재정위원회 세법개정 논의는 난항이 이어졌다.
대립각을 세우던 여야는 지난 28일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을 현행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전격 인하하는 절충안을 통해 극적으로 타결하고 국채발행 규모도 당초 3~4조원 대에서 9000억원 이하로 줄이기로 의견 접근을 했다.
비록 법정처리기한(12월 2일)은 지났으나, 10년 만에 여·야 예산안 합의처리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여야는 지난 29∼30일 주말을 반납한 마라톤협상 합의점을 도출하고,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를 열어 최종 합의안을 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순조로워 보였던 여야 정치권의 예산안 협상은 제주해군기지 예산 문제를 놓고 또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당초 예정대로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여권과 사업예산을 일부 삭감하고, 공사를 일시 중지할 필요가 있다는 야권의 입장이 마지막까지 대립하는 형국이다.
여야는 이 문제로 여전히 본회의 개최의 마지막 관문인 예산결산소위를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또 다시 과거처럼 예산안 단독처리 '구태(舊態)'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참고로 지난 18대 국회 마지막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여야 정치권은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예산안 부수법안인 세법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우선 처리한 뒤에, 예산안을 표결처리해야 하는데 새해를 앞두고 시간에 쫓긴 여야는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 뒤 세법을 나중에 통과시킨 것이다.
이른바 '버핏세' 도입 논란으로 양당의 소득세법 수정대안이 상정돼 막판 표결처리에 들어갔기 때문인데, 올해 역시 마찬가지로 야당이 소득·법인세법 본회의 수정대안 직결상정을 예고하고 있어 작년과 같은 절차상 '하자'를 또 다시 반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시간은 자정까지 불과 4시간여 안팎 남은 상황. 한해 나라살림을 결정지을 예산안 통과를 위해 필수적인 예산결산계수조정소위와 본회의는 여전히 개최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쇄신국회를 강조한 정치권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19대 국회 첫 임기부터 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