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총리지명자로 선택했던 박근혜 당선인의 깜짝 인선 카드는 5일 만에 없던 일이 됐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29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후보자 사퇴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지난 24일 박근혜 당선인이 직접 총리지명자를 발표한지 불과 5일째 되는 날이다.
김용준 후보자는 총리 지명 이후 두 아들의 대한 병역, 부동산 투기문제 등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곤혹을 치렀다.
당초 인사검증에 자신감을 내비쳤던 김 후보자는 박 당선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본격적인 인사청문회 전에 빠른 용퇴 결정을 내린 것으로 관측된다.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들이 전부 사실은 아니더라도, 인사청문회를 통해 정치권의 의혹제기가 더해질 경우 사실 여부를 떠나 차기 정권에 출범 전부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변인은 "김 후보자가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드려 국무총리 후보자 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김 후보자는 일부 언론보도에 억울한 측면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들 가운데 일부는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강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자는 사퇴의 변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 되어 인사 청문회가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기를 소망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지적이 일부 맞는 측면도 있지만, 근거가 부실한 추측성 기사도 많아 심적으로 고민한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윤 대변인은 "지금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김용준 위원장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지만, 지금 여기 표현대로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며 일부 보도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는 점을 언급했다.
김 후보자는 사퇴 전 박 당선인과 의견교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변인은 "김용준 위원장이 박 당선인과 사전에 면담해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박 당선인이 고심 끝에 김 후보자의 용퇴결정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기류는 인수위 측의 발표시점 번복으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오후 6시30분경, 7시 긴급브리핑을 공지했던 인수위 측은 약 3분 뒤 발표 보류를 알렸다가, 2분 만에 또 다시 계획을 바꿔 김 후보자의 사퇴를 전격 공개했다.
공개 직전까지도 내부적으로 의견교환이 오가며 입장이 바뀔 가능성도 있었던 것을 암시하는 대목인 셈이다.
윤 대변인은 김 후보자의 구체적인 사퇴배경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향후 김 후보자가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을 직접 해명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선 "본인이 공인이니 적절한 시기에 구체적으로 할 것으로 보인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후보자 스스로 박 당선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용단을 내린 모양새지만 후속 총리 지명 작업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새 정부 초대 총리 지명자가 자진사퇴 것 자체가 헌정사상 최초의 일인 데다가, 장관급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이 있는 총리후보자의 낙마로 당초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었던 각 행정부처 장관후보자 지명도 연이어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사례를 통해 후속 지명자의 사전 언론을 통한 검증문제에 부담감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후속 총리 지명자 윤곽은 조만간 나타나겠지만, 아직까지 확정된 부분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변인은 "후임 인선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결정되는 대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후보자는 겸임 중인 인수위원장직과 관련해선 "박 당선인의 의중에 따르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안정적 운영을 지향하는 박 당선인의 스타일상 인수위원장까지 중도에 교체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