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없는 세종시, "맛있게 좀 먹어보자" =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매일 점심시간마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긴 줄을 서야 식당 밥을 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구내식당 음식 맛이 너무 형편없다는 평가가 많다. (세종청사 5동 구내식당, 사진=장은석 기자)
깐깐하다.
대한민국의 정책을 책임지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일 처리뿐만 아니라 '입 맛' 또한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최근 입맛을 잃어버렸다. 지난해 연말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각 부처들이 세종청사로 이전하면서 '밥맛'이 너무 없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부랴부랴 지은 청사건물 덕분에 주변에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식당조차 찾아보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때가 많지만 맛이 너무 없다고 울상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청사 주변에 당장 점심을 사먹을 만한 변변한 식당이 별로 없어, 말 그대로 '꽃거지'(?)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얼마 전 구내식당 메뉴로 생전 들어보지도, 먹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핫도그 백반'이 나오자 결국 공무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 세종시 공무원은 '꽃거지?'…"돈 있어도 밥 먹을 데가 없다" = 우선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편하게 밥을 먹기조차 너무 힘들다. 점심마다 구내식당 앞에 긴 줄을 늘여 세운 공무원들의 모습만 봐도 세종시에서는 밥 한끼 먹기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새 알 수 있다.
현재 세종청사 내에는 총 4개의 구내식당(예약제 식당 별도)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식사시간마다 몰려드는 공무원들을 식당에서 모두 소화해낼 수가 없어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세종청사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동원홈푸드에 따르면 현재 청사내 4개 구내식당에 마련된 좌석 수는 총 1536석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 직원들만 해도 1100명이 넘는 상황에서 11시30분∼12시 사이인 점심식사 피크타임에는 50m 이상 긴 줄을 서야 밥을 구경할 수 있다.
밥을 식판에 담아도 문제다. 밥과 반찬을 식판에 떠도 않아서 먹을 자리가 없어 한동안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정부세종청사관리소는 구내식당에 직원들이 쏠리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초등학교 급식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2부제를 시행 중이다.
1∼3층 직원들은 11시30분부터 식사를 시작하고, 4∼6층 직원들은 12시 이후에 식당을 이용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구내식당도 배식시간을 종전 1시에서 1시30분까지 연장해 직원들의 식사시간을 분산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국정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중앙부처 엘리트 공무원들이 점심·저녁식사 한 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말 그대로 '생고생' 중이다.
구내식당에서 밥 먹기가 어렵다면 외부 식당을 이용하면 된다지만 세종청사 주변에는 식당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청사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 건설현장의 함바식당이 전부다.
최근에는 점심시간에 공주, 조치원, 대전유성 등에까지 20∼30분 이상 자가용을 끌고 나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점심 원정대'들도 부쩍 늘었지만, 짧은 점심시간과 비싼 기름값 부담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과천청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식당이 수두룩했고, 전화로 예약하면 식당에서 청사까지 봉고차를 보내 태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세종시에서는 이 같은 VIP급 서비스도 기대할 수가 없다.
한 기획재정부 공무원은 "가족들과 떨어져 세종청사로 내려와 고생하는 마당에 밥이라도 잘 먹어야 하는데 이건 밥 먹는 것조차 너무 힘들다"며 "구내식당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주변에는 식당이 없고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 밥맛 없는 세종시, "핫도그 백반 먹어봤니?" = 특히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구내식당의 밥맛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불만이다. 밥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배는 채워야 하기에 먹고 있다는 공무원들도 많다.
공무원들은 한 동안 구내식당 음식의 신선도가 너무 떨어져 불만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에 따르면 냉동식품이 자주 반찬으로 나와 먹기가 거북했다는 반응이다.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지난해 세종청사로 이전하고 나서 밥을 먹을 데가 없어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했는데 반찬이 너무 신선하지가 않더라"며 "냉동만두를 튀긴 군만두가 반찬으로 너무 자주 나와서 질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공무원들에 따르면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동원홈푸드가 틈만 나면 계열사인 동원F&B에서 생산한 냉동식품과 양반김을 반찬으로 제공했다고 알려졌다.
신선하지 않은 반찬들과 냉동식품을 계속 먹어야 했던 공무원들로서는 당연히 구내식당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쌓아뒀던 불만은 폭발했다.
공무원들에 따르면 얼마 전 세종청사 5동 농림수산식품부 6층에 위치한 구내식당에서 '핫도그 백반'이라는 메뉴가 나왔다. 밥의 주 반찬으로 핫도그가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누가 봐도 밥과 핫도그의 궁합은 그리 잘 맞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반찬에 불만이 많았던 공무원들도 핫도그 백반에 분노(?)를 느꼈다.
기획재정부의 한 직원은 "솔직히 핫도그 백반을 보고는 화가 나더라"며 "요즘도 가끔 밥을 먹으러 갔다가 반찬을 보면 식판을 확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3500원짜리 세종청사 밥, "나아지긴 했는데..." = 세종청사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동원홈푸드는 식당 음식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만이 접수되자 반찬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예전보다 밥맛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맛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세종청사 구내식당 밥, 사진=장은석 기자)
□ 밥맛이 나아지고 있다…"입맛은 돌아오지 않는데?" = 이날 이후 각 부처 직원 인트라넷에 핫도그 백반의 사진과 함께 불만 섞인 글들이 올라왔고, 결국 세종청사관리소 등을 통해 동원홈푸드에 시정 요구가 전해졌다.
다행히 공무원들의 불만을 듣게된 동원홈푸드는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핫도그 백반 사건이 벌어진 직후 4개 구내식당으로 동원에서 직접 잡은 참치를 공수, 공무원들의 눈앞에서 해체해 참치회를 반찬으로 떠주는 등 반찬 질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동원홈푸드 관계자는 "초반에 공무원들이 식당 반찬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냉동식품이 반찬으로 자주 나왔다고 생각하시는 공무원들이 많은데, 미리 준비했던 반찬들이 떨어지면 가장 빨리 준비할 수 있는 냉동식품으로 대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은 냉동식품도 주 1회 정도만 제공하고 있고, 그동안 반찬 수도 늘리는 등 메뉴도 다양하게 구성해 식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며 "현재는 공무원들로부터 많이 개선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냉정한 평가는 다르다. 구내식당 밥이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맛있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솔직히 냉동식품이 줄어들었고, 반찬도 신선해지면서 구내식당 밥맛이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며 "하지만 아직도 과천청사 구내식당과 비교하면 맛이 85% 수준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공무원은 "구내식당 밥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다시 가고 싶지가 않다"며 "요즘은 동료들과 함께 웬만하면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서 점심을 해결하곤 한다"고 전했다.
구내식당을 관리하는 정부세종청사관리소의 관계자는 "처음에 구내식당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많이 접수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후 식당 좌석 수도 늘리고 업체를 통해 반찬의 질도 많이 개선하는 등 공무원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