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북한 탈출한 18년 베테랑 의사의 남한 정착기(定着記)
'의사에서 세무사사무소 직원으로, 그리고 의사로'.
7년전 북한을 탈출해 우리나라(남한)에서 새로운 자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김영희(51, 여, 가명)씨의 인생유전이다.
북한 이탈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와 자유대한의 국민으로 적응하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실제로 지난 2005년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서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김씨도 우리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하지 벌써 7년째지만 아직까지 완전하게 정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달 꿈에도 그리던 국가고시의사시험(제77회)에 최종합격 하면서 자신이 북한에서 천직으로 여겨온 의사로서의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낚아 올렸다.
김씨는 이달초 대한민국에서 의사고시에 합격한 사실을 통보 받고 "남한으로 넘어온 후 새 삶을 향해 달려오면서 7년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에 감사드린다"면서 "이제 천직으로 여겨온 의사로서의 삶을 대한민국에서도 펼쳐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대한민국의 의사고시에 도전하게 된 것은 북한에서 18년동안 의사로 재직해 오면서 의사를 천직으로 여겨온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
김 씨는 북한에서 함흥의과대학(6년)을 졸업하고, 황해북도에 소재한 군병원에서 18년간 의사로 재직해오다, 지난 2005년 탈북을 결심, 남한의 품으로 들어왔다.
그해 말 북한 이탈민들의 대한민국 적응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오면서 그의 대한민국 정착기가 본격 시작됐다.
그가 가장 먼저 찾아나선 직업은 의사. 그러나 그는 북한을 나오면서 가장 중요한 '의사면허증'을 챙겨오지 못했다. 남한에서는 면허증이 없으면 의사로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지인의 도움으로 국립의료원에서 북한 이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상담을 시작하면서 의사로서의 직업을 이어가는 듯 했으나, 환자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정식의사로서의 활동이 아닌 상담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정식의사가 되기위해 의사면허를 취득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주위로부터 남한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전문분야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정부 지원 무료자격증을 딸 수 있는 전산세무회계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게 된다.
북한에서 의과대학에 쉽게 합격할 정도로 어릴적부터 수재소리를 듣던 김씨는 전산세무회계학원을 다닌지 6개월만에 전산회계 1,2급과 전산세무2급 자격증을 따게된다. 그리고 그는 세무사사무실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가 이력서를 제출한 곳은 수십여 곳. 자신을 알아봐 준 곳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한우세무법인'이었다.
그는 "한우세무법인은 저의 은인입니다. 한국에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준 곳이 한우세무법인입니다. 평생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또 한우세무법인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될까지 일했습니다. 그곳 근무세무사와 전무님께서 쉬어가면서 일하라고 했지만 저를 채용해준 것에 대한 보답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일한 것이 오히려 저에게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세무신고와 결산업무 등 세무사사무실에서 하는 업무는 무엇이든 척척할 수 있는 세무전문가가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중에 병원을 하나 차리게 된다면 세금문제 만큼은 스스로 척척 처리할 수 있게되어 다행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한우세무법인에서 3년여를 근무한 김씨는 항상 머릿속 한가득 떠나지 않고 있던 '의사의 꿈'을 위해 시간제 근로를 택했다. 반나절 정도만 일하고 오후에는 의사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그래서 한우세무법인을 그만두고 개인세무사 사무실로 옮긴 후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는 의사공부에 매달렸다. 공부에만 전념하기엔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
그러나 북한에서 18년 의사생활을 한 베테랑이지만 한국에서의 의사공부는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외국어 때문이었다. 북한에서는 진단명 등 의료용어를 모두 라틴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는 한국에서의 의사시험은 태산같은 난간이 버티고 있었다.
의사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모두 17개 과목의 책을 통달해야 했다. 모르는 영어단어를 일일이 사전으로 찾아가며, 주경야독한 결과 공부를 시작한지 2년만에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합격의 소식을 듣는 순간 "해냈구나.." 스스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물론 18년 경력의 베테랑 의사에겐 의사실기 시험은 단번에 합격했다고 한다.
지난 4일 "대한민국 의사면허증이 집으로 도착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의사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준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아산병원, 서울의료원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의사'에서 남한의 '세무사사무실 직원'의 삶으로,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 의사'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펼쳐 나가게 될 김영희 씨의 인생2막이 벌써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