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후보 하마평, 대부분 '법관 출신'
한 번의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또 다시 법관 출신의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할까.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총리 후보직 낙마로 박 당선인이 법관 출신이 아닌 출신성분이 다른 인물을 선택할 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법관 출신들이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조무제 전 대법관과 안대희 전 대법관, 김능환 전 대법관 모두 법관 출신이고 당내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역시 판사 출신이다. 김진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만이 행정공무원 출신이다.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법조계의 '큰어른'으로 통했던 김 위원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의 상처를 받고 낙마했음에도 박 당선인이 법관 출신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평소 소신과 철학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신뢰·원칙 중시 朴, 법관 이미지와 딱 맞아 =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보면 법관 출신을 유난히 많이 기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 대선 때 '정치 쇄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던 안철수 전 후보의 대항마로 안 전 대법관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으로 임명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번에 낙마한 김 위원장 역시 대선 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깜짝 임명돼 세간을 놀라게 했으며 남기춘 서울서부지검 검사장, 이상민 전 춘천지법 원주지원장 등도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이 끝난 뒤에도 김 위원장을 다시 인수위원장에 앉혔으며,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면을 두고 일부에서는 한번 신뢰하면 끝까지 믿고 간다는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박 당선인이 이처럼 법관 출신을 자주 기용하는데는 신뢰와 원칙을 중시하는 평소 철학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학과 법을 준수하고 정의와 공정성을 심판하는 자리인 법관과 박 당선인의 철학이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김 위원장을 총리 후보로 지명할 때 말한 것만 봐도 어디에 국정운영 철학을 뒀는지 알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24일 김 위원장을 총리 후보로 지명한 이유로 "김 지명자가 나라의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무너져 내린 사회 안전과 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국민행복시대 열어갈 적임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법과 원칙을 중점에 둔 것이다.
비록 김 위원장이 증여세 포탈 및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법관 이미지에는 금이 갔지만 여전히 총리 하마평에 법관들이 대다수인 것은 이 같은 박 당선인의 철학 때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법관 출신 총리의 명암은? = 역대 총리 중 법관 출신은 얼마나 될까.
5공 이후 법관 출신의 총리는 이회창 전 총리(대법관 출신)와 김석수 전 총리(대법관 출신), 김황식 현 총리(대법관 출신) 등이다. 범법조계 출신으로는 이수성 전 총리(서울대 법학 교수 출신), 이한동 전 총리(검사 출신) 등이 있다.
법관 출신 총리의 강점으로는 균형감각을 꼽을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원고와 피고 등 양쪽의 의견을 듣고 심판하는 일을 해왔고 이는 각계각층의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총리직에 적합한 측면이 있다.
법관 출신인만큼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이미지와 청렴한 생활을 유지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랜 시간 동안 재판만 한 탓에 경제나 정치 등 다른 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정치에 욕심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법관 출신 총리 중 가장 유명세를 탄 것은 이회창 전 총리다.
대개의 총리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국무위원 제청권 등을 행사하지 못하고 대통령 '보좌'나 '대독' 역할에만 그치는 것과 달리 이 전 총리는 문민정부(김영삼 정부)에서 소신있게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려고 했다.
문민정부 초기 이 전 총리가 감사원장을 지냈을 당시 '성역'으로 불려졌던 청와대 비서실과 국방부를 감사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이 전 총리는 대통령 측근들과 갈등을 빚었고 김 전 대통령마저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자 "허수아비 총리는 하지 않겠다"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소신은 있었지만 현실은 몰랐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다.
이 전 총리와 비슷한 케이스인 김황식 총리는 연임 얘기가 나올 정도로 총리직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법관을 지낸 김 총리는 감사원장도 역임해 국정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날 뿐더러 여야의 정치적인 공격에도 잘 대응한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감사원장을 역임할 당시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없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전력이 있어 이것이 김 총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