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펌, 외교부 자문하더니 론스타와 손잡고 ‘적으로’…국익 저해 우려
국내 기업들의 묻지마 해외로펌 선호현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반 대기업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도 토종로펌을 외면하고 해외로펌을 찾고 있다. 정부부처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2011년 1월 영국계 석유회사 다나페트롤리엄 인수를 축하하는 성공기념식을 성대하게 가졌다. 해외 석유개발 거점을 미주와 구소련 지역에서 북해ㆍ아프리카 등지로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자축연이었다.
그러나 당시 수조원 규모의 대형 인수합병(M&A)에서 법률 자문을 맡은 로펌은 국내 로펌이 아닌 영국계 로펌이었고, 인수자문료는 몽땅 해외로펌에 넘어갔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사업 진출을 위해 호주 풍력발전단지 인수를 추진하면서 인수자문단을 외국계 로펌으로 선정했다.
한전은 호주 민영 에너지회사인 트루에너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중북부 소재 워털루 풍력발전단지를 인수하기 위해 인수의향서(LOI)를 전달하면서 한전측 인수 자문단을 HSBC와 영국계 로펌 애셔스트로 구성했다.
공기업 뿐만 아니다. 심지어는 정부 부처조차 해외로펌에 의존하다보니 국익마저 손상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한국 정부를 위해 통상분쟁 관련 자문을 해주던 법률 대리인이 어느날 적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외환은행 지분 매각 과정에서 부과된 양도세는 외국자본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소송(ISD) 법률 대리인은 미국계 로펌 시들리 오스틴이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까지 5년간 한국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통상분쟁 자문계약을 맺고 있었다.
시들리 오스틴은 외교통상부와 2007년부터 자문계약을 맺고 7억9000여만원의 대가를 받아갔다. 자문 대가로 월 1만달러 이상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들리 오스틴은 지난해 5월 론스타가 투자자-국가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한국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보내면서부터 법률 대리인을 맡은 것이 알려졌고 외교부는 뒤늦게 사태파악에 나섰다. 시들리 오스틴은 그해 7월16일 자문계약 해지 의사를 통보해 계약을 종료시켰다.
해외로펌들이 지난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사무소를 개설하면서 매출 또한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리포드 찬스는 지난해 10월과 11월 두달간 23억5000만달러(2조5500억원)에 달하는 3건의 글로벌 중기채 발행과 4억달러 규모인 SK텔레콤의 포스코 블록 거래에 대해 조언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의 2022년 만기 선순위채권 7억5000만달러 발행, 농협의 5억달러 규모 2017년 만기 5년채 중기채권 발행, 2018년 만기인 SK텔레콤의 7억달러 규모 해외채권 발행 등이다.
클리포드 찬스는 지난해 매출기준 영국 1위이자 세계 5위의 로펌으로 한해 매출이 우리나라 법률시장 전체 규모와 맞먹는 20억9050만달러(2조원상당)에 달하는 대형 로펌이다.
특허전문 로펌인 롭스 앤 그레이는 개소 3개월만에 10건의 특허 및 상법 관련 사건을 수임했다. 수임한 사건의 대부분은 미국 법정에서 진행되는 특허소송이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변론도 맡았다.
서울 중구 센터원빌딩에 자리잡은 미국계 로펌 쉐퍼드 멀린의 김병수 대표변호사는 지난해 9월 “개소식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2개 기업에서 연락이 와 사건을 맡겼다”고 말해 해외로펌의 인기를 여실히 보여줬다.
◆…자료 : 한국은행
■ 지난해 법률서비스 수지 적자 첫 6억달러 넘어…국내 로펌 위기감 고조
많은 대기업들이 해외로펌을 찾고 있고 국내 공기업마저 해외로펌에 물량을 넘겨주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법률서비스 수지 적자는 지난해 6억5700만달러에 달했다.
지난 2011년 법률서비스 적자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억 달러를 넘어선데 이어 1년만에 또다시 적자폭이 1억 5000만달러 늘어나 법률시장 개방 후유증을 앓고 있다. 법률서비스 수입·지출 내역이 무역수지에 반영되는 데에는 1~2년의 시차가 있어 적자 규모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서비스무역 세분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로펌들이 기업 인수합병 등의 법률서비스로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7억2040만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 로펌에 지출한 법률서비스 비용은 13억7740만달러에 달해 법률서비스 분야 무역수지 적자는 6억 5700만달러로 집계됐다.
달러당 환율 1085원을 기준으로 할 때 적자 규모는 무려 7128억원에 이른다. 법률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는 2017년에는 적자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6년간 우리나라의 법률서비스 수지를 살펴보면 수입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조금씩 느는 반면 지출은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외국 로펌으로 빠져나간 지급액은 2007년 7억350만달러, 2008년 8억5800만달러를 기록한데 이어 2009년 10억1740만달러, 2010년 10억6080만달러, 2011년 11억8360만달러, 2012년 13억 7740만달러 등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반면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된 비용은 2007년 5억3200만달러, 2008년 6억5890만달러에서 2009년 5억3780만달러로 떨어진 뒤 소폭 증가세를 보이다가 2011년 6억8240만달러, 지난해 7억2040만달러를 기록했다.
법률서비스 국제수지 적자는 2007년 1억3000만달러에서 2008년 1억9910만달러, 2009년 4억7960만달러로 늘었고 2011년에는 5억210만 달러, 지난해 6억5700만 달러에 달했다. 6년만에 5배가 넘는 큰 폭의 적자를 보이고 있다.
한국사무소를 낸 해외로펌들은 국내 대형 로펌들의 주력분야인 특허·지식재산권, 기업 인수합병(M&A), 경영자문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어 국내 로펌들의 위기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