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수 중앙대 특임교수
요즈음 조세피난처(tax haven)로 알려진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 주주 명단이 공개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지하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애플(Apple)社가 아일랜드 자회사 3곳에 1천억 달러(110조원)의 자산을 두고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고 청문회를 여는 등 유명기업의 과세 회피 행위가 주요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도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해 전국인민대표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심각한 지하금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실물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고 밝히는 등 지하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침임을 밝히고 있다.
2008년 유럽 금융 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재정 여건이 악화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OECD 국가 등에서는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 등 직접적인 증세보다 비과세·감면 정비나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하여 세수를 확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율 인상이 방법상으로는 가장 간단하지만, OECD 국가는 이미 부가가치세율 등 간접세의 세율이 높고 자국경제의 국제적 경쟁력 유지를 위하여 법인세·소득세 등 직접세를 인상하기는 어려운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세수 확보 목적 외에도 그동안 과세 대상에서 포착되지 않거나 누락된 부분을 과세 영역에 편입함으로써 사회 통합도 강화할 목적을 내보이고 있다.
누군가 세금을 내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만큼 더 세금을 내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소득이나 재산 수준에 따라 누구나 합당하게 세금을 내고 있다는 컨센서스의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세계적으로 경제사정의 악화가 사회통합성 약화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소득이 포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박근혜 정부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하여 직접적 증세없이 재원을 마련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발표하였는데 이는 국제적인 추세에도 맞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겠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고액 현금 자료를 과세자료로 활용하는 범위를 확대하고, 현금·차명 거래 등 과세 취약분야, 고소득자 및 대규모 자산가의 불법거래, 해외거래를 통한 조세회피 등에 세정 역량을 집중하도록 하는 것은 세정 당국에서 그동안 반드시 했어야 할 일을 추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본다.
다만, 추진 과정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점은 반드시 유념해 주었으면 한다.
첫째, 지하경제 양성화 과정에서 실제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지하경제를 더욱 은밀하게 숨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저해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정상적인 사업자가 안심하고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되는 분야를 분명히 밝히고 해당 지하경제 분야에 국한하여 세정을 강화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분야에 관계없이 적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불안감만으로 지하에 있던 납세자가 전반적으로 세금을 제대로 낼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둘째, 금융거래 실물 인프라와 함께 실물거래에 대한 기존의 과세 인프라를 정비하고 보완하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정부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전자 세금계산서, 현금영수증 제도, 사업용 계좌제도 등을 도입하여 과표 양성화 효과를 거두어 왔는데 이러한 기본 제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의 지하경제에 대하여 오랫동안 연구한 것으로 명성이 높은 독일의 슈나이더(Schneider) 교수도 최근에 지하경제 축소 방안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과 같은 인센티브 정책을 높게 평가하였다. 지하 경제 양성화는 시스템의 문제이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재정건전성 회복과 사회통합 강화를 위한 시대적 과제이다. 정부에서 의욕있게 시작한 만큼 뚜렷한 목표의식과 끈기있는 실행력을 가지고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중앙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최경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