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장남 전재국씨의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 설립과 이에 따른 해외금융계좌 개설의혹을 공개한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는 이른바 '4대 의혹'을 들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당국의 조사를 촉구했다.
□ 명백한 유령법인, 거액 자금 어디서 들어왔나? = 뉴스타파는 우선 전재국씨가 2004년 7월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블루 아도니스'라는 회사가 명백한 '유령법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회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사업을 영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이나 그 전에 은닉했던 재산을 운용하는 통로로 활용하기 위한 '금융계좌 개설'에 목적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당 법인이 당초 자산 5만 달러로 등재했으나, 실제로는 1달러짜리 주식 1주에 불과하고, 등기이사 역시 전재국씨 본인이라는 점에서 계좌개설을 위한 유령법인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뉴스타파는 "해당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아랍은행에 해외계좌 개설 작업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계좌정보, 자금거래내역, 이사회 회의록 등을 해당 은행에 보관하겠다는 의미는 해당 법인명의 계좌를 개설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왜 2004년에 만들었나?"…의심스런 계좌 개설 시기 = 뉴스타파는 해당 계좌를 개설한 시기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전재국씨가 해당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버진아일랜드에 유령법인을 설립한 시기는 지난 2004년 7월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에 앞선 지난 2003년 10월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의 차명계좌로 167억원이 자금이 유입됐다는 정황을 포착, 이 가운데 73억원이 비자금계좌에서 유입됐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추징금 압박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뉴스타파의 주장은 계좌 개설시기가 검찰의 비자금 조사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재국씨가 당시 계좌 개설을 상당히 서둘렀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실제로 당시 계좌개설 업무를 담당했던 페이퍼컴퍼니 설립대행업체 직원들 간에 오고 간 이메일 내용에는 계좌 설계에 필요한 공증서류 분실로 계좌개설이 늦어졌고, 이로 인해 고객(전재국씨)의 자금이 묶여 상당히 화가 나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타파는 "당시 전씨는 어떤 계좌에 예치해 둔 돈을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유령회사 명의의 아랍은행 계조로 급하게 이체하려고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왜 아랍은행인가? = 전씨가 계좌를 튼 것으로 확인된 아랍은행은 전형적인 자산관리형 프라이빗 뱅킹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해외 금융회사로 당국의 조사권 밖에 있으며, 비밀을 엄수하는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측은 전재국씨가 당국의 자금추적 및 추징금 압박을 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자금 흐름 추적이 어려운 전문 프라이빗 뱅킹인 아랍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것 아니겠냐는 주장이다.
특히 뉴스타파는 아랍은행이 대재산가들의 자산을 관리하며 일부 법인계좌의 경우 수천만불 이상의 거액이 오고간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전재국씨 명의의 계좌에서도 상당 금액의 자금이 운용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해당 은행에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측면에서 전재국씨 외 한국인 큰 손들이 상당수 은행을 이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더해졌다.
□ 자산 29만원 주장했지만, 자녀들은 수백억 자산가 =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가족이 여전히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 전 대통령이 1988년 백담사로 쫓겨나면서 재산 헌납 의지를 밝혔을 때 그의 재산은 연희동 집, 서초동 땅, 콘도·골프 회원권, 금융자산 23억 등이 전부였다. 당시 장남 전재국씨는 물론 차남 재용씨, 삼남 재만씨 모두 경제적 능력이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이들은 모두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다.
우선 장남 재국 씨가 운영하고 있는 시공사는 작년 매출액 440억원이며, 자산은 290억원에 달한다. 그가 소유한 부동산 서초동 사옥 땅을 포함해 최소 3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차남 전재용 씨도 50억원대의 서초동 시공사 건물, 대지 지분과 한 채에 30억원 상당인 이태원 고급빌라 3채는 물론 재개발 추진 대상인 서소문 일대 건물을 소유 중이며, 삼남 전재만 씨 역시 한남동의 100억원대 빌딩 소유주다.
전 전 대통령은 당초 전 재산을 헌납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지만 연희동 사저는 부인 이순자 씨에게, 서초동 땅은 재국·재용 씨에게 결국 물려줬다.
결국 전 전 대통령은 재산을 일가에 나눈 뒤, 본인은 2003년 파산을 선언하고 추징금을 고의로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 뉴스타파의 주장이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는 관련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 전 대통령은 작년 총선당시 추징금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당국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고, 부인 이순자씨는 자녀들의 재산이 많다는 지적에 "대한민국은 각자각자이지 연좌제가 아니다"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뉴스타파는 "오는 10월11일이면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시효가 끝나는 상황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았다"며 "앞으로 관건은 해당 계좌를 통해 어떤 자금이 어떻게 운영됐고 어디에서 흘러들어갔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과 국세청 등 관련 정부 기관이 전재국씨 명의 페이퍼컴퍼니 계좌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비자금과 관련된 혐의를 밝혀내고 가능한 모든 추징금을 환수해서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