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2013년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가 내려진 지 단 하루만에(공식 발표 닷새만에) 정부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목에 대한 수정안을 제시하며 '항복'을 선언했다.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중산층 근로자 세부담 증가.
실질적으로 정부가 노린 타겟은 연소득 7000만원 이상 상대적 고소득층이었다. 이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복지재원으로 돌린다, 이것이 정부가 진짜로 노린 '정책목표'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중산층'의 출발점을 연소득 3450만원으로 잡고, 이 부분부터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으로 설계하면서 '서민층'으로까지 전선(戰線)을 넓히는 우를 범한 것이다. 정부는 통계적 수치에 근거해 연소득 3450만원을 중산층으로 잡았지만 현실과의 괴리감은 상당했다.
실제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 수준을 조금 상회하는 연봉을 받는 직장인들은 물론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더라도 대부분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즉 정부가 통계학적 분석이 가미된 '숫자'를 가지고 서민층-중산층-부유층을 나누고 이 정도 수준이 중산층, 이라고 규정해 국민들의 수긍을 강요하는 것은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지는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동원한 명분 또한 빈약, 논란을 자초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명분이 확실하다면 그깟 세금 1∼2만원 더 내는 것은 용인할 수 있는 문제다. 국민들의 분노가 발화된 지점도 세금의 액수가 아닌 빈약한 증세명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인 과세, 공무원 직급보조비 과세 등 비과세 '성역(聖域)'을 무너뜨리는 카드를 내밀었지만 반발을 덮기에는 파괴력이 너무 약했고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했다. 국민들의 눈에 확 들어오는, 국민들의 '조세박탈감'을 해소해주는 조금 더 진일보된 카드를 함께 내밀어 설득했다면 논란은 됐겠지만 이 정도 수준의 여론반발은 불러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증세 없는 복지재원 확보, 라는 신기루 같은 목표를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든 점도 문제다.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고 세수확보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무슨 수로 그 어마어마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증세밖에 없다. 실제로 2013년 세법개정안 전반을 꿰뚫고 있는 기조도 증세다.
사실상 증세를 추진하면서, '조세정상화'라는 타이틀을 붙여 국민들을 속이려고 했던 부분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세법개정안의 핵심이자 논란의 핵심인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은 원칙적인 측면에서 올바른 방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세정상화'는 증세를 묵인해줄 만큼의 설득력을 갖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정부가 채택한 '접근법' 자체에 상당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타이밍을 잘못 잡은 측면도 크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곳간을 열어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명분이 부족한 세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판국에 대통령이 내놓은 약속(복지확대)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약속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경기침체에 고통받는 국민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
정부의 정책은 '최고 권력자'에 코드를 맞추는 것이 아닌, '국민'에 코드를 맞추는 것이다. 정부가 이 부분을 간과한 것은 이번 세법개정안의 최대 실책이다. 현실이 받혀주지 않는다면 약속을 수정하던지, 이행 시기를 뒤로 미루는 것이 상책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은, 세법개정안 논란 과정에서 빚어진 책임자들의 경솔한 '언행'이다. 이번 세법개정안의 정신을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으로 해 보려고 한 것'이라고 말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표적이다.
콜베르 징세논리의 취지는 납세자의 조세저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절대왕정 시대도 아닐 뿐더러, 정부가 털을 뽑는지 밀어버리려고 하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국민들의 수준이 낮지 않다. 국민을 무시하는 뉘앙스가 담긴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모시고 사는(?) 현실에 한숨만 나온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 박근혜 대통령도 문제다. 세법개정안 논란이 격화되자 마치 구경꾼인양, 세법개정안의 방향이 정부 경제정책과 맞지 않으니 원점 재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 발언은 대통령이 중대사안인 세법개정안 내용을 전혀 몰랐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거세지는 반발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박 대통령의 발언은 문제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이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신뢰도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키워 놓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욕먹을 각오로 달려든 공무원들의 사기 또한 떨어뜨렸다.
이래 저래 이번 세법개정안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 곳곳에, 그리고 국민들의 마음에 무수한 '생채기'만 깊게 패어놓았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