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애널리스트 코너 우드먼은 아프리카 수단을 방문했을 당시 고장 난 차를 대여 받아 큰 곤란을 겪었다. 그는 끝내 렌터카 업체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수단이란 국가는 국가권력이 개인의 권리보다 우위에 있는 이른바 경찰국가다. 내일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수단 사람들은 고객과의 장기적 거래 보다는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미리 계획을 세워두는 사람은 오히려 건방져 보이기까지 하다."
정치변동으로 인해 내일을 예견할 수 없다는 불안은 수단 국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대한민국 금융권의 지각변동은 아프리카의 정치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2009년 KDB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분리 당시 정부는 산은으로부터 정책금융 역할을 분리해 투자은행으로 거듭난다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정작 기업공개(IPO)가 지지부진하면서 큰 빛을 보지 못했다. 현 정부의 정책금융기관 통합 안이 산은그룹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올해 4월부터 논의된 정책금융 개편은 중소기업 금융 지원이라는 미명 하에 추진됐다. 기관끼리의 중첩업무를 없애고 정책 수행 기능을 강화한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5년전 정부의 명분은 이와 달랐다. 정부는 산은의 정책금융 역할이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하고, 시장 마찰의 해소를 위해서는 정책금융을 공사로, 산은을 민영화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역설했었다.
이랬던 당초의 명분은 새 정부가 제시한 통합의 당위성 앞에 종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손바닥 뒤집듯 바뀐 정부 방침으로 인해 통폐합의 기로에 놓인 당사자들과 시장참여자들은 혼란스러움을 호소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정책금융을 정치 리스크로 인해 단기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한다는 속 앓이다.
정금공의 노조 관계자는 "새로운 시스템이 자리 잡는데 1,2년이 소요되고 또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야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도 혼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며 "대기업이나 다른 상업적 금융과 섞이지 않아 장기적으로 (정책금융을) 바라볼 수 있는 순수한 정책기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은 비록 산은과 통합되는 처지지만 차기 정권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시사했다.
최근 들어 금융감독체계 개편 문제로 '동병상련'의 처지가 된 금융감독원 직원들과 만나면 "5년 뒤에 다시 바뀔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주고받는다는 그의 농담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아울러 기관들 간 통폐합 과정에서 소요되는 재정 문제도 개편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요소다.
정금공 측은 산은과 통합할 경우 1조8000억원의 충당금 적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15조원 규모의 공기업 주식이 산은에 편입되면 연간 5000억원이 넘는 이자 비용이 발생해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요인들을 합하면 '비용'은 더욱 커진다.
무역보험공사의 한 직원들은 수출입은행과의 통합설 때문에 정책금융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기 힘든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자기가 맡은 업무보다는 앞으로의 거취에 더 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다.
무보 직원들은 수은과의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한 달여 간 금융위 앞에서 시위하는 일에 몰두해야 했다.
거시적 시각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금융을 운영해야 할 이들을 눈앞의 '밥그릇'에 목 맨 거리의 시위꾼으로 전락시킨 것은 누구인가.
시장과의 장기간 신뢰를 구축하기 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조급하게 추구하려는 모습에서 한국 정부와 수단이라는 렌터카 사업자 간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정치가 불안하면 국민은 근시안이 된다. 업무수행의 효율성도 좋지만, 국민들은 먼저 변함없고 신뢰할 수 있는 정부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