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책금융 개편에 따라 오는 2014년 통합을 앞두게 된 KDB산업은행(좌)과 한국정책금융공사(우)
산은·정금공 2014년 통합…창조 금융 완결판
통상·시장 마찰 재점화 우려…갈등 불씨 여전
5년 전 산업은행으로부터 분리, 중소기업의 자금 공급을 맡았던 '한국정책금융공사'는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금융위원회가 27일 발표한 정책금융 개편안에 따르면 오는 2014년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에 흡수 통합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했으며, 정부는 '창조 경제'와 '창조 금융'을 모토로 벤처 전용 주식시장 코넥스(Korea New Exchange), 성장사다리펀드를 만들었다.
정책금융 개편은 중소·벤처 지원을 위한 정책 의지의 완결판으로 불린다. 중첩된 정책금융기관의 업무를 합쳐 비효율을 막고, 창조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할 정책 자금을 시의적절하게 공급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바로 정부의 복안이다.
그러나 기관 간 흡수 통합이라는 것은 인력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만큼 일각의 반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또 '조직 분할-재통합'의 과정은 다른 공공 기관들에 있어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당초 정부가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신용·기술보증기금'을 하나의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무산됐으나, 향후 장기적으로 볼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평가다.
정책금융과 관계없는 금융 공공 기관들 역시 향후 새 정부의 정책에 따라 분할 후 재통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음 달 국회에 제정법으로 상정될 예정인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분리안(案)'도 다음 정부의 공약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관이라는 것이 분리해 놓으면 업무가 중복될 뿐 아니라 서로 영역을 넓히려고 다툰다. 이를 나중에 다시 합치려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지금 금감원이 우려하는 것 역시 그러한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 5년 만에 해체되는 정금공 "중소기업 육성하라 할 땐 언제고…" = 정책금융공사는 지난 정부에서 산업은행 민영화를 전제로 중소기업 지원 강화를 위해 산업은행에서 분리, 설립됐다.
산은의 정책금융 역할이 수명이 다했고 시장 마찰의 해소를 위해서는 정책금융을 공사로, 산은을 민영화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는 것이 당시 금융위의 설명이다.
정금공의 통합 내용을 담은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은 현재 유일하게 여야가 이견을 내지 않는 상황.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두 기관의 업무 중 70%가 중복되고 있다"며 "현재와 미래의 정책금융 수요를 감안해 정금공을 산은에 흡수합병한 후 금융시장 안정은 정부 기관에서 직접 수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정금공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중소기업 육성과 국가 신성장 산업 발전에 기인해 온 지난 노력들을 모두 무시당했다는 항변이다.
정금공 관계자는 "금융위가 주도한 TF의 원래 취지는 정책금융 강화와 시장 마찰 해소라는 명제인데 이를 공사와 산은의 통합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민영화 추진을 위해 소매 금융과 IB(투자은행) 등 상업금융 분야를 확대해온 산은이 이제 와서 정책금융을 도맡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공사와 산은을 통합하면 통상 마찰을 불러오고 시장 마찰 문제가 재점화 될 것은 분명하다"며 "그 와중에 지원이 시급한 중소기업만 정부 정책의 실패로 죽어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붙였다 뗐다 하는 정책금융기관, 대통합이 다음 수순? = "창조 경제란 창업을 돕고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관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업무 영역을 조정해도 기능은 그대로니까요."
한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의 말이다. 창조 경제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자금이 충분히 흘러들어야 하고, 적절한 투자처가 있어야 한다.
또 증권시장에서 제때 회수가 돼 투자 수익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김형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그동안 정책금융공사는 중소·벤처기업에 자금 공급의 역할을 해왔지만, 산업은행은 구조적으로 대기업 위주의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은행들은 건전성을 관리해야 하는데 벤처 펀드에 투자하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미 통합이 정해졌고 굳이 해야 한다면 정부에서 업계의 우려 사항들을 수렴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나머지 정책금융기관인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되 중복 업무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수은의 고(高)위험 및 단기 여신 비중은 오는 2017년까지 전체의 77%에서 40% 이하로 줄인다. 무보의 경우 단기 보험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며 그동안 독점했던 수출보험은 민간에 개방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통합 정책금융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에 통합 정책금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전체를 통합해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들은 현행 통합 정책금융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손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