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해 안팎에서는 증세(增稅)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게 형성됐고, 이 목소리는 2013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정부가 일정 소득 이상의 특정계층(중산층)의 소득세 부담 증대를 추진하면서 더욱 부피를 키우고 있다.
증세논란의 '촉매제'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 즉 '복지확대'다.
5년 동안 135조원, 어마어마한 규모의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경제활성화 및 인위적인 세율조정 등 증세를 통해 세수를 확대하거나 국채발행 등 빚을 내어 돈을 융통하는 방법, 낭비성 예산을 잡아내 잘라내는 '세출축소' 등 3가지 뿐이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방법이다. 증세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빚을 내는 방법은 현재 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의 희생을 강요해야 한다. 세출축소가 가장 접근성이 높은 방법이지만 그 동안 '말'로만 해왔을 뿐 제대로 해낸 정부가 없다.
현 시점에서 재원마련의 '전제조건(복지확대)'을 삭제하거나 고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 대안일 수 있지만, 불행히도 최고 권력자의 소신은 변함이 없다.
□ "1만원도 내기 싫다"…'조세저항'에 무너진 사상누각(沙上樓閣) =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의 핵심은 근로자에 대해 적용하는 소득공제 제도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의료비·교육비·보험료 등), 연소득 3450만원 초과 근로자들부터 세부담을 늘리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연소득 3450만원 초과 근로자 434만명의 소득세 부담을 누진적으로(4000만원∼7000만원 연 16만원, 7000만원∼8000만원 연 33만원, 8000만원∼9000만원 연 98만원, 9000만원∼1억원 이하 연 113만원, 3억원 초과 연 865만원) 증대한다는 방침이었다.
직접적인 세율 인상이 아닌, 간접적인 방식의 증세였던 셈. 하지만 정부의 방침은 엄청난 조세저항에 부딪혀 단 5일만에 주저앉고 말았다(세부담 상승 기준선 3450만원→5500만원 조정).
조세원칙과 논리 측면에서 정부의 설계도는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지만 현실에서 인식하고 있는 중산층의 개념을 차용하지 않고 통계상 존재하는 중산층 개념을 끌어다 세부담 상승 기준선을 설정했다는 것이 최대 '패착'이었다.
또한 경기침체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 부족, 소득세 인상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내놓은 명분과 접근법을 잘못 세팅, 정부는 체면만 잔뜩 구기고 물러나고 말았다.
하지만 긍정적 측면에서 볼 때 정부가 손에 아무것도 넣지 못한 것은 아니다. 굳이 증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형태로 접근해야 하는지, 무엇을 선결해야 하는지 등 새로운 해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힌트'를 얻었다는 측면에서 성과를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봉(鳳)'은 따로 있다…고소득층 소득세 인상, '합당'한가 = 조세형평 등 거룩한 간판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정부가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을 통해 얻어내려 한 결과물은 결국 복지확대에 필요한 추가재원이었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도화선이 되면서 안팎에서는 복지확대에 필요한 재원마련을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민주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을 대안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른바 '부자증세'다.
실제 민주당은 2년 전 도입한, 소득세 과표 3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38%로 올리는 '한국판 버핏세'를 강화, 최고세율 적용 과표구간을 1억5000만원 수준까지 끌어내리고 최고세율도 4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제도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출발선을 잘못 설정하면서 무더기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정부의 소득공제→세액공제 전환 카드가 실제로 목표한 지점도 고소득층이었다.
세금의 응능부담 원칙을 고려하면, 고소득층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방침이 원칙적 측면에서 환영받은 이유는 현행법상 설정된 과도한 소득공제가 고소득층 세부담 하락을 일정 부분 유도, 응능부담 원칙을 훼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극명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고소득층이라고 해서 무조건 세금을 더 내도록 하거나, 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은 형평과세 측면에서 볼 때 너무 과격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고소득층의 반발력을 키우고, 가처분 소득의 축소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등 경제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이들의 직간접적인 조세회피 시도를 부추기는 등 궁극적으로 '국부유출'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탈세를 일삼는 '부도덕한 부자'와 정직하게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 '착한 부자'를 한 묶음으로 취급, 착한 부자만 봉으로 만드는 기형적 제도는 탈세유인만 키울 뿐 아니라 세수확보에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조세전문가는 "대한민국에도 착한 부자들이 많다. 이들이 납세의무를 성실히 이행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사회의 인식은 착한 부자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정책 기조도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는 축"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이희정·이현재·강상엽·김중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