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양성화의 선봉장이자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세수확보라는 공통적 숙제를 안고 있는 국세청과 관세청. 두 기관은 명실상부한 양대 세입기관으로서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늘리고 줄인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날고 기는 대기업들이 벌벌 떨 정도로 이 기관의 역할과 권한은 어마어마합니다.
이 세무조사 문제로 국세청은 늘 정치적 중립 논란에 시달려 왔습니다. 국세청 스스로 이를 부추긴 측면도 있지만 특정한 세무조사 행보에 대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려는 측면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비롯된 것이 바로 '국세청법' 입니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발의한 국세청법은 국세청장의 임기보장(2년)과 복수차장제, 내부승진 제도화, 국세공무원의 특정직 공무원화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국세청장의 임기를 보장해 인사문제로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기관운영을 하라는 취지로 발의된 국세청법은 분명 좋은 의도에서 시작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관세청의 심정은 뭔가 복잡미묘(?) 합니다.
국세청에서 먼저 임기보장을 해달라거나 세무공무원을 일반직 공무원이 아닌 특정직 공무원으로 전환시켜달라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대놓고 내색하기는 어렵지만, 섭섭한 마음은 감추기가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관세청은 국세청과 마찬가지로 세입기관이지만, 국세청에 비해 1/3 수준에 불과한 세수 때문에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출입 물건 통관과 여행자 휴대품 통관, 밀수감시, FTA 확대로 인한 업무증가 등 관세청이 하는 일은 세수확보 뿐만이 아닌데도 20년 동안 관세청 직원은 4500여명에 불과해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원부족 문제로 개발한 관세업무 전산화 시스템은 행정시스템을 투명하게 해 오히려 납세자나 민원인이 관세공무원을 단순 '서비스직'으로 여기는 상황으로 만들었습니다.
인천공항세관에서는 여행자들이 관세공무원들에게 욕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데요. 자신들은 욕을 먹는데도 기업이나 납세자들이 국세청 직원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보며 관세공무원들이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세청 직원들을 신분이 보장되고 보수체계도 일반직 공무원과는 다른 특정직 공무원(법관·검사·경찰 등)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관세청 직원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겠죠.
마약밀수나 외환불법거래 등을 조사할 때는 경찰 뺨칠 정도로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는 것이 관세공무원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청장의 임기보장과 직원들의 위상을 높여 줄 특정직 공무원화는 관세청 직원들이 더 열망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얼마전 만난 일선 세관의 한 직원은 여행자 휴대품을 엑스레이로 검사하다가 가방이 쓰러졌는데, 자신을 마치 외판원 대하듯 쓰러진 가방을 똑바로 세우라고 화를 낸 한 여행자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 직원은 "위에서는 문제가 커지면 복잡하니 무조건 사과하라고만 한다. 이걸 하려고 관세청에 들어온 것이 아닌데, 자존심이 참 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비단 이 직원만 겪은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관세공무원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일들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관세청법을 제정한다고 해도 일선에서의 이 같은 일은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관세공무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밀수현장을 단속할 것입니다. 다만 현장에서 묵묵히 땀흘리며 일하는 직원들에게 정신적 보상을 해줄 방법으로 관세청법 도입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