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비밀주의 장벽 '와르르'…"역외탈세 성지(聖地)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5일 '한-홍콩 조세조약 제3차 교섭회담'을 통해 홍콩과 이중과세방지협정에 합의하고 가서명을 했다. 이번 조약이 발효되면 역외탈세 적발 등을 위한 사업자 등록, 회계, 금융거래 등의 정보를 우리 정부가 홍콩에 요청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마련된다.

홍콩은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적 국제금융 중심지로 해외에서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이 수월, 전통적으로 국제금융센터 역할을 해 왔던 지역. 하지만 홍콩은 그동안 우리나라와 조세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역외탈세 천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홍콩은 우리나라의 해외투자국 중 4위(2012년 기준)에 해당하지만 홍콩 국내법상 제약으로 국제기준에 맞는 조세정보를 교환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역외탈세를 시도하는 거부들의 검은 돈이 집결되는 대표적인 조세피난처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홍콩의 비밀주의 또한 세계적 기류 앞에 맥없이 무너질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홍콩이 지난 2010년 조세정보 교환 관련 내국법을 개정함에 따라 즉각 홍콩 정부와의 협상을 시작했고 지속적인 접촉 끝에 결실을 맺게 됐다.

□ 한국의 부호들이 손꼽는 역외탈세 천국, '홍콩' = 홍콩은 자국 거주자라고 해도 국내소득에만 세금을 부과할 뿐 역외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독특한 세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역외탈세의 심각성을 사회전반에 심어주는 계기가 됐던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4000억원대 역외탈세 사건에서도 증명됐듯(당시 권 회장은 자신이 홍콩 거주자라고 주장했었다), 홍콩은 그야말로 역외탈세 천국으로 각광받았다.

최근 스위스의 비밀주의가 국제사회의 고강도 압박으로 산산히 부서진 것과 달리 여전히 커다란 자물통을 채워두고 있던 홍콩은 반사이익을 받아 '역외금융센터'의 위상을 더욱 강화, 은밀한 검은 돈 거래를 원하는 재력가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자산가들은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홍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올해 국내 자산가들이 홍콩의 해외금융계좌에 입금해 둔 자금의 액수(자진신고금액 기준)가 1546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64%가 늘어나기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금융 비밀주의와 역외소득에 대한 비과세 방침 등 자금 흐름에 대한 노출 부담이 없다는 점이 조세피난처와 아닌 국가의 경계선에 있는 홍콩으로 세계 각국의 돈이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엄밀히 따지면 홍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지정한 조세피난처(Tax Paradise)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홍콩은 'Tax Shelter'(국내 원천소득만 과세하는 지역)로 불법 외환거래, 재산도피, 자금세탁 등 조세회피 시도가 집결되는 지역이다. 역외탈세 근절을 위해 공조체계를 강화하고 있는 세계 주요 국가들에게는 요주의 대상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끌어낸 홍콩과의 이번 협약에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역외탈세 위험성이 높은 홍콩과의 조세협약이 진작 이뤄졌어야 했다는 의견이다.

한 조세전문가는 "홍콩은 역외탈세 위험성이 매우 높은 국가로, 조세조약 체결이 당연히 진행됐어야 했다"며 "이제라도 협약을 했으니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아마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는 업체들은 지금 많이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조세전문가는 "홍콩에 지사 등을 두고 있는 내국법인의 경우 홍콩 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한계점이 있었다"며 "하지만 조세조약 체결을 통해 홍콩금융기관 거래자료 등 정보를 받을 수 있으면 현지에서 과세하지 않았던 것도 과세할 수 있어 역외탈세 시도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국가공조 강화, 공공의 적 '역외탈세' =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역외탈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물론 각 국의 정부는 발빠른 움직임을 계속해 왔다. 

가장 가까운 예로 지난 7월19∼2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G20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국가 간 조세정보를 자동교환 하는데 합의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국가 간의 공조가 필수인 역외탈세를 잡아내기 위해 조세피난처 등 탈세가 우려되는 국가와의 '조세조약' 체결 또는 기 체걀된 조세조약의 개정(정보교환 규정 삽입)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스위스, 싱가포르, 바레인 등 전 세계 80개 국가와 조세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또 제정을 추진 중인 국가 중 서명국은 7개국, 가서명국은 이번에 협약한 홍콩을 포함한 9개국으로 이를 모두 합치면 96개 국가에 이른다.

이와 더불어 조세조약의 세부협정인 '조세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해 시행 중인 국가는 3개국(쿡아일랜드, 마셜제도, 바하마)이며, 체결을 추진 중인 국가 중 서명국은 2개국(버뮤다, 바누아트), 가서명 국가는 버진아일랜드를 포함한 12개 국가가 있다.  

대표적인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에 대한 협정체결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역외탈세 차단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어 조속한 시일 내에 체결이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한 조세전문가는 "과거 국가들 간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전략이 암묵적으로 있어왔는데 최근에는 국제사회가 정보공유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국제적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는 역외탈세로 인해, 앞으로도 국가 간 조세협약이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같이 단순한 정보교환만으로 역외탈세를 차단하기엔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공동세무조사' 등 지금보다 적극적인 역외탈세 제거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윤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조세협약 체결 국가를 늘리는 것으로 인해 역외탈세자 설 땅이 좁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국가 간 정보교환으로만 안 되고 공동세무조사를 해야 한다"며 "협약에 공동 세무조사 조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이뤄지는 경우는 없는데 실질적인 공동세무조사 또는 동시세무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