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는 얘기가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창작의 고통보다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바로 없던 제도를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새로 만든 제도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혹은 구제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출입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 기준을 충족하면 통관 절차 등을 간소화 시켜주는 수출입안전관리우수업체(AEO) 인증 제도의 기준을 만든 조홍영 관세평가분류원 관세행정관도 마찬가지였다.
조 행정관은 10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 가진 인터뷰에서 "AEO 인증은 2009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제도로 기준이 없었다. 기준을 처음 만들 때는 우리나라 관세행정 발전을 유도하는 쪽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했기에 부담이 됐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AEO 제도는 미국 9·11 테러 때 도입된 것으로 2005년에 국제규범을 만들고 우리는 2009년에 도입했는데 다른 나라 기준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려웠다"며 "다른 나라는 안전한 장소에 물건을 보관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것만 명시돼 있어 6개월 동안 기준에 대해 교육을 받고 연구만 했었다"고 설명했다.
6개월 동안 조 행정관은 직원들과 함께 합숙을 하기도 하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AEO 인증 기준을 만들었고, 이를 초석으로 우리나라가 AEO 인증을 주도하는 선도국으로 거듭나게 됐다.
□ "새로운 도전은 내 운명" = 조 행정관에게 '새로움'이란 것은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다.
조 행정관이 AEO 인증 기준을 만드는 작업에 팀장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바로 그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조 행정관은 지난 2000년 말로만 들어도 생소했던 '위험관리업무'를 맡게 됐는데 당시 업무를 훌륭히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정된 인력으로 늘어나는 무역량을 감시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위험한 물건을 선별해 집중 검사하는 기준을 만든 조 행정관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조 행정관이 AEO 공인심사팀장으로 발탁될 당시 2년 동안 미국에 유학을 가 있었기 때문에 업무단절이라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조 행정관은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냈다.
늦깎이로 시작한 영어공부지만 이를 십분 활용해 지난 6월에는 세계관세기구(WCO)가 주최한 '중동·북아프리카지역 AEO 제도 도입을 위한 워크숍'의 진행자로 참석해 우리나라의 AEO 인증제도를 널리 알렸다.
다른 나라에서는 안전한 장소에서의 물품 보관 등의 원론적인 기준만 만들었다면 조 행정관은 울타리 몇 미터가 안전한 장소라는 구체적인 기준과 인증점수까지 매기는 기준을 만들어 창의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은 조 행정관은 관세행정 최고책임자에 대한 조언과 조직진단 및 제도설계에 대한 자문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전 세계적으로 20명 밖에 되지 않는 WCO 자문관(AEO 인증 분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 행정관은 "미국에서 AEO 인증제도를 시작했을 때는 안전에 초점을 맞췄지만 우리는 관세행정 순응도라는 것을 더했다"며 "기업들이 수출입신고를 할 때 정확하게 신고하면 세금누수가 줄어들고 지하경제 양성화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가정의 행복이 곧 직장의 행복" = AEO 인증기준을 만들기 위해 몇 달 동안 합숙과 야근에 고생했던 조 행정관. 일에 바쁜 그에게 가족들이 섭섭해할 수 있지만 가족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바로 조 행정관이 '저녁은 집에서'라는 원칙을 지키기 때문.
일이 많아도 왠만하면 집에 일을 가지고 가서 집에서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게 안되면 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나와 동료들과 일을 한다.
저녁을 먹다보면 시간이 늘어지고 그만큼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가족들과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조 행정관이다.
조 행정관은 "기본적으로 야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이 있으면 남아서 해야하지만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하는 대기성 야근을 싫어했다"며 "AEO 인증 기준을 만들었던 6개월 동안에도 자발적으로 남아서 일을 했지, 싫은데 일부러 남아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조 행정관이기에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도 남다르다. 조 행정관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패션감각을 자랑했는데 직장인들이 입는 검은색 양복보다는 분홍색, 하늘색 재킷으로 패션을 뽐내는 그. 이 모두가 조 행정관을 성실히 내조하면서 아끼는 부인의 '센스'라고 한다.
가정에서 행복해야 직장에서도 행복하다는 조 행정관은 "직원들에게 야근을 강요하고 앞에서 강력하게 이끌어가기보단 자발적으로 직원들이 동화되면서 일하는 것을 원한다"며 "앞으로 동료들에게 따뜻한 형 같은 존재가 돼 주고 싶다. 그런 관세인으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약력]
▲1965년 ▲국립세무대 ▲1986년 관세청 임용
▲성남세관, 안양세관, 김포세관, 관세청 정보관리과, 관세청 위험관리팀, International Field Consultant. Ltd.(미국 파견), 관세청 교역협력과(WTO DDA 협상), 관세청 AEO 공인심사팀, 관세청 관세평가분류원 관세평가과(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