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shutdown일시폐쇄)이 16일 만에 극적으로 타결돼 미국이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에 빠지는 최악의 위기는 모면했다.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시장도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고 시기를 몇 달 미룬 미봉책에 불과해 세계는 조바심을 갖고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미국 여야지도부는 연방정부의 셧다운을 풀기 위해 현 수준에서 내년 1월 15일까지 예산을 계속 집행하고, 국가부채 한도는 내년 2월 7일까지 일시 증액토록 잠정 합의했을 뿐 본질적인 내용 합의는 뒤로 미루었다. 시간은 벌었지만 미국 정치권이 지금까지 보여 온 행태로 미루어 큰 기대는 금물이다.
16일간의 셧다운 만으로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에 적잖은 후유증이 벌써부터 우려되고 있다. 80만 명에 달하는 연방정부 직원의 무급휴가와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당장 4분기(10~12월) 미국 경제성장률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주가 넘는 셧다운의 피해액이 이미 2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며 4분기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로 내려잡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 축소여부도 불투명해지면서 세계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미국 리스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상한선인 16조7000억 달러를 이미 돌파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3%에 육박했다. 상한을 올리지 않고는 더 이상 국채를 발행할 수 없고, 국채이자도 갚지 못해 부도가 날 상황이다.
전 세계 GDP의 22%를 차지하는 기축통화국 미국이 부도가 나는 경우 일개 투자은행 부도로 시작됐던 2008년 금융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쓰나미가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를 강타할 상황이었다. 과거 브레튼우즈 체제를 뒷받침하며 세계경제의 안전판 구실을 하던 미국 경제가 어느덧 세계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뇌관이 된 것이다.
미국 국가부채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감세정책과 이라크전쟁이 근본 원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국가부채가 매년 1조 달러씩 늘어난 것도 국채이자 증가에다 금융위기 이후 구제 금융과 경기부양책 때문이다.
미국 채무의 해외 의존도 역시 덩달아 커지고 있다.
미국 국채는 해외보유자가 절반을 넘는다. 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발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경제가 위기에 처하면 전 세계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계속 미국국채를 사줘야 하는 형편이다.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통했던 미국 국채가 어느새 채권자를 옥죄는 '족쇄' 내지 '품 안의 폭탄'으로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고, 달러로 빌린 부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달러를 찍어서 갚을 수 있다는 얘기는 옛말이다.
1970년대 달러의 금태환정지에 따른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는 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 때의 달러 찍어내기와 연관이 깊었다. 넘치는 달러로 외국중앙은행들이 금을 다투어 사들여 미국의 금보유가 격감해 달러와 금태환 시스템을 지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재정위기 또한 이라크전쟁과 결코 무관치 않고, 유로존 위기 역시 미국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붕괴로 촉발됐다는 점이 70년대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의 '분에 넘치는 지출'과 재정적자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미국 아닌 다른 나라들이 이랬다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잽싸게 경고를 하고 통화의 평가절하에다 가혹한 긴축조치 등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달러화가 세계 기축통화이고 미국 재무부가 세계금융시스템의 중심인 탓에 그 책임에서 미국은 항상 '예외적(exceptional)' 존재였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가 미국에서 비롯됐는데도 가혹하기로 소문난 IMF는 미국에 대한 제재나 경고는 고사하고 그 흔한 권고메시지도 이렇다하게 발한 것이 없다.
미국이 재정적자를 구조적으로 줄이지 않고 미봉책으로 버티며 양적완화로 달러를 계속 찍어낼 경우 달러가치는 추락하고 과잉유동성으로 세계경제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연방정부를 셧다운 시킨 '주범'으로 공화당내 극우세력 티파티(Tea Party)가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티파티의 반대논리는 결코 터무니없지는 않다. 티파티의 '티'(TEA)는 '세금을 낼 만큼 냈다' (Taxed Enough Already)의 세 단어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1773년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에 대한 조세저항운동의 진원이었던 보스턴 티파티에서 따왔다.
월가와 부실대기업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구제금융 지원에 항의하기 위해 2009년에 결성된 모임이지만 세금을 더 걷어 큰 정부를 만들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국정운영에 반대하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통칭한다. 2010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당선된 공화당 하원의원의 3분의 1인 80여 명 중 절반이상이 이 티파티 소속이다.
위기를 촉발시킨 핵심 쟁점은 건강보험개혁법안, 이른바 오바마케어다. 비록 연방정부가 오바마케어 비용 90%를 지원한다지만 세수기반이 빈약한 주정부들은 나머지 10%마저 부담할 여력이 거의 없고, 국가부채가 천문학적 수준인 상황에서 정부 빚이 더 늘면 결국 미래세대가 갚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오바마케어가 이미 대통령선거를 통해 국민적 동의를 받았다는 입장인데 반해 공화당은 국민들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하원의 다수당으로 만들어주면서 이를 막아달라고 명령을 내린 것으로 해석한다. 공화당이 억지를 부리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 공화당을 국정파트너로 함께 품고 가는 백악관과 민주당의 정치력 부재 또한 문제다.
미국의 재정위기는 표면상 정치위기이지만 본질은 분수에 넘치는 지출이 불러온 구조적 위기다. 증세든 지출축소든 구조적 개혁을 단행해야하고, 국내적으로 소득불균형 해소와 함께 해외채무를 줄여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신용을 유지하는 노력과 의지를 세계에 보여야한다.
중국은 보유중인 미국국채 가치를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미국에 이례적으로 경고를 발했다. IMF도 미국재정위기가 세계경제에 손상을 가져오지 않도록 미국에 공개 경고했고, 러시아 푸틴대통령은 미국이 "스스로를 예외적인 존재로 믿는 것은 위험하다"며 '도덕적 해이'에 일침을 가했다. 글로벌경제시스템의 원만한 작동에 대한 미국책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 연기로 지난 8월 24일 이후 외국인자금이 몰려들면서 우리 주식시장이 때 아닌 활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내년 1월 미국 발(發) 불확실성 폭풍에 대비해 수출에 장애가 되는 원화의 추가적 고평가를 예방하고 내수 진작과 외화 유동성 확보 등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