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 임기를 보장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 직무수행상 정치적 중립성을 제고할 수 있는 측면은 있다. 다만 국세청장 임기제가 정치적 중립 보장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이 되기는 어렵다."
"국세공무원의 특정직공무원 전환은 유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세공무원, 지방세공무원과의 형평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세제실, 국세심판원(현 조세심판원) 근무자들의 포함여부도 고려되어야 한다."
지난 2007년 국세청법 입법안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국세청법 도입을 위해 합의점을 찾아야 할 부분들이 명확하게 정리됐다. 국세청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이 두 가지 부분(임기제 실효성, 특정직화)이 사실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세청장 내부승진제를 법제화하는 부분도 논란의 쟁점 중 하나지만 앞서 언급한 두 부분에 비하면 입장대립이 그리 첨예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세청법 도입 논의가 '용두사미(龍頭蛇尾)' 역사로 점철된 직접적인 이유는 국세청장 임기제 실효성에 대한 논란과 국세공무원 특정직화에 대한 찬반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채 접점을 찾기 힘든, 평행선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첩첩산중(疊疊山中)'
1999년 국세청공무원법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2007년과 올해 발의된 국세청법은 임기제를 핵심으로 삼았다. 지난 2009년에도 국세청법이 아닌 국세청장 임기제(2년 단임)만을 따로 떼어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임영호 전 자유선진당 의원 입법발의).
임기제 도입의 명분은 간단명료하다. 모두 정치적 중립성 확보다. 국세청법 찬성론자들은 국세청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조성 차원에서 임기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
정치적 영향력으로 국세청장의 신변이 좌우된다면 결과적으로 정권의 눈치를 보고, 정권의 신임을 얻기 위한 조직운영을(권한남용)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세청장도 사람이기에, 신분유지에 대한 열망과 불안감이 정치적 행동 감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의 논리도 찬성론자들의 그것만큼 탄탄하다.
법으로 임기제를 명시해도 실효성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9년 임기제를 채택한 검찰의 경우에도 보장된 임기를 채운 뒤 퇴임한 이들은 극히 드물다. 또한 수장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며 조직을 운영토록 보장하기 위해 임기제를 적용했음에도 불구, 검찰 또는 경찰 조직이 빈번하게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에 휩싸인 부분도 반대론자들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특히 임기제와는 별개로 정치 중립을 명시한 개별조직법 통제를 받는 국가정보원이 대선 댓글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도 임기제를 포함한 국세청법 자체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부호를 찍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국세청장 내부승진제의 경우에는 찬성론자보다는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더 높게 형성되어 있는 형국이다. 찬성론자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은 이유는 내부승진 출신 국세청장들이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감옥에 가는 등 망신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국세청 조직과 국세청 고위직들에 대한 '신뢰'가 상당부분 소진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세청 조직이 흡사 군대와 같은 철저한 상명하복(上命下服) 체계로 돌아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나친 폐쇄성과 비밀주의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외부충격(외부인 출신 기관장)'을 적절히 가미해야 한다는 논리가 내부승진제 법제화를 반대하는 축을 떠받치고 있다.
국세공무원의 특정직화는 최대의 대척점이다.
특정직화의 의미는 곧 국세공무원들의 '보수인상'.
금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충분한 수준의 보수를 보장하고 청렴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지향점이지만, 이는 예산상의 문제와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세청, 조세심판원 등과 같은 유사기능을 수행하는 타 기관 소속 공무원들과의 형평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과거 국세청법 시도가 흐지부지 된 직접적인 이유도 이 부분에 대한 접점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찬성론자들조차 원칙적 측면에서 특정직화를 통한 청렴성 확보(부정부패 적발시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보수인상이 청렴성 확보의 기폭제가 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찍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세수증대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부서에 소속된 국세공무원들에게 사실상의 보수인상이나 다름없는 인센티브(ex : 1999년 국세청공무원법 상 '세수증대포상금')를 부여하는 방식을 차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조세전문가는 "국세공무원들의 보수가 낮은 것이 부정부패의 원인이라면 다른 기관 공무원들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세법해석의 자의적 해석이 부정부패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특정직화를 통한 보수인상 보다는 이를(자의적 해석) 방지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청렴성 확보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국세청법 제정과 관련해 국세청의 공식적인 입장은 '신중'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상당수 국세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국세청법 도입에 대한 미묘한 기대감이 형성되어 있다. 물론 이번에도 소리만 요란한, 시도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상당하다.
최근 국세청은 국세청법 도입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민주당 조정식 의원의 요청에 검토의견을 냈다. 요약하면 '국세청법 제정은 정부·국민·국세청 내부직원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다.
국세청법을 반대할 입장은 결코 아니지만 두 손들고 환영할 수도 없다, 국세청법 제정 움직임을 바라보는 국세청의 속내다. 국세청 일각에서는 기왕 국세청법을 제정하려면, 국세청 인사체계 개편(행시-비행시 균형인사)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 시점에서 국세청법 제정 가능성을 높게 점쳐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국세청법 도입을 시도하는 야당의 계산과 논의 테이블에 둘러앉아야 할 여당의 셈범이 명확히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적 결단을 이끌어낼 요인(국민적 합의 등)도 전무한 상태다.
역사가 반복된다면, 국세청법 도입 시도는 이번에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2007년 이후 추진주체와 반대주체가 뒤바뀌었을 뿐 각자의 입장도, 쟁점에 대한 합일점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국세청법 입법안이 장착하고 있는 유일한 추진동력은 야당의 의지뿐이다.
기획취재 : 김진영 정책팀장, 이희정·이현재·강상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