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보호 명분 신용카드 수납 금지…실효성 '0'
영세 사업장, 카드 강제…거대 기업은 현금 입장
2000년대 후반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도박장의 폐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당시 정부는 국무총리 산하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를 만들고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두며 비교적 큰 권한을 쥐여 줬다.
문제는 이 기관이 강원랜드의 불법 칩(chip) 매매 등 현장 단속에 그치면서 사행산업의 실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과 상당한 괴리감을 나타내고 있다.
관련 법들은 서로 다 달라 정부 정책 및 외국인 투자 자본에 혼선을 빚고 있다. 일부 법의 경우 소수의 사업장에만 적용, 기준 없이 운영되고 있다.
■ 우유부단한 정부? 사행산업 경쟁력 떨어뜨려 =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사행산업에 대해 '건전한 국민 생활을 저해하고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운영하는 나눔로또나 강원랜드, 한국마사회 등 사업이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비쳐질 수 있어 부처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 당국의 관계자는 "국민 보호를 위해 신용카드 금지 정책을 실시하면서 법이 사행산업을 부정적 의미로 규정했지만, 당시 관련 부처들은 국가가 운영하는 사행산업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며 모순을 지적했다.
사행산업과 관련해 특별법에서 규정하는 특례들은 무분별한 인가와 난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카지노를 둘러싼 논란을 줄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치려면 정부가 관련 법들을 통합하고 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 신용카드 금지 정책, 중독 방지 효과 있나? = 현행법은 복권을 비롯해 내국인 카지노, 한국마사회의 칩이나 마권 구매를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없도록 한다. 국가가 빚을 내 도박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에서 지난 2010년 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새 정부는 가계 부채를 줄이기 위해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장려 정책을 시행, 일부 사업장에서 모든 종류의 카드를 금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상반되는 문제도 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한국마사회 등 일부 사업장에서는 신용카드나 은행에서 결제금이 인출되는 체크카드와 전자카드를 허용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일기도 한다.
심지어 국내 유일의 내국인·외국인 겸용 카지노인 강원랜드에서는 전액 국가 징수 세금에 해당하는 입장료마저 카드 결제를 금지시켜 사업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실제로 도박 부작용을 방지하는 효과도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인 카지노의 경우 관광객들이 대량의 현금을 휴대하는 것이 어렵고, 한국마사회의 입장료 역시 편의성을 이유로 선불식 교통카드를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장권의 경우 하루 1회 구매를 통해 무제한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박 부작용과 큰 관련이 없다는 논란의 소지도 생긴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현행법상 사행산업이 카드 수납을 할 수 없도록 돼 있어 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법안 개정 작업을 한 정부 당국의 관계자는 "법상 '사행성 게임의 이용 대가 및 이용에 따른 금전의 지급'에 대해서 카드 결제가 금지되고, 이는 포괄적 명시인 만큼 입장료 같은 경우 유권해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미국 네바다주(Nevada) 연방 정부는 카지노에서 신용카드 금지 대신 현금 거래 내역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3000달러(약 322만원) 이상의 현금은 칩 교환이 안되며 1만달러 초과의 현금 거래는 국세청(IRS)에 보고된다.
무엇보다 강원대학교 교수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용카드와 도박 부작용 사이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 객장 안팎에는 신협과 신한은행의 현금인출기(ATM)가 상당수 설치돼 있다. 강원랜드 카지노 고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금 소진 시 43.1%는 ATM 인출을, 40.1%는 은행 인출을 한다고 답했다.
심각한 도박 중독 증세로 볼 수 있는 사채업자 대출이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자금을 융통하는 경우는 각각 6.4%, 4.6%로 드러났다.
카지노 고객의 현금 소진 시 행동
|
빈도 |
은행 인출 |
ATM 인출 |
사채업자 대출 시도 |
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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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자주 |
40.1% |
43.1% |
6.4% |
43.2% |
|
거의 안함 |
56.4% |
53.6% |
88.2% |
51.2% |
◆…자료: 강원대학교
■민간 사업자 차별? 카드 업계는 "언제나 환영" = 이러한 정책이 문제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민간 사업자의 신용카드 의무 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기업의 매출을 투명하게 하고 지하경제를 차단하기 위해 사업주가 카드 결제를 거부할 경우 법적 처벌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정재연 강원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정부가 영세 사업장의 카드 수납을 강제하면서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거대 기업을 예외로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 관계자는 "국립공원 입장료 같은 경우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장객 편의를 위해서 카드사와 가맹점 계약을 맺은 곳에 한해 법적 효력이 생기는 것이고 신용카드를 강제적으로 허용하면 수수료 배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카드사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카드 수납을 막는 것은 수용할 수 있다"며 "하지만 카드 허용이 된다면 당연히 다 하고 싶은 게 업계 입장이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