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명퇴…"국세공무원이라 행복했다"

훤칠한 키에 깔끔한 용모로 '신사의 품격'이 연상되는 정통세무관료 이승호 부산지방국세청장이 27일 오전 11시 퇴임식을 갖고 40년에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평소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소통이 원활해 상하동료 간 신망이 두터운 이 청장은 괴력의 추진력을 소유한 자타공인 '조사통'이다.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 스타일.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대구농림고를 졸업한 후 영남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8년 7급 공채 시험에 합격해 공직생활에 몸을 담궜다.

일선 세무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사무관 승진 이후 포항세무서 직세과장, 경산세무서 직세과장, 대구국세청 소득세과장 등을 거쳤다. 서울국세청 조사1국, 국세청 조사국 등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조사 실무와 기획 능력을 키웠다.

서기관 승진 이후 구미세무서장을 거쳐 서울국세청 조사1국3과장과 총무과장(현 운영지원과장)을 지냈으며, 국세청 원천세과장, 조사1과장에 이어 부산국세청 조사1국장으로 근무했다.

국세청 조사1과장 재직 시절 부이사관으로 승진했고, 2011년 6월에는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하면서 첫 보직으로 중부국세청 조사3국장을 맡았다.

또 그해 12월말에는 고위직 인사를 통해 국세청 기획·심층세무조사 본거지인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자리에 올랐으며, 올해 4월 직업공무원 최고위직인 1급으로 승진, 부산국세청장으로 취임하여 공직생활의 정점을 찍었다.

국세청 원천세과장 재직시절, 병·의원 등의 연말정산 자료제출업무를 깔끔히 마무리해 명성을 얻기도 했으며, 조사국에 장기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기업 세무조사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 "국세공무원의 삶, 행복했다"

입사 당시 세무직공무원을 따로 뽑지 않아 일반 행정직 시험을 치르고 국세청에 발령받았지만 40여년이 흘러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지금, 이 청장은 국세공무원으로 일하게 돼 진심으로 행복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청장은 "국세청에서 근무하는 2만 여명의 직원 수준이 전부 높다. 그중 훌륭한 선배들을 벤치마킹하여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며 "국세청에서 근무하며 만난 사람들은 사회를 보는 눈이 뛰어나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고시출신도 오르기 어렵다는 직업공무원 최고의 자리에 오른 비결에 대해 이 청장은 국세청에서 같이 근무한 동료들과 후배들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이 청장은 "고시출신은 개별적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 대다수지만 인사라는 게 인사 당시 자신의 위치가 중요하다보니 부득이하게 1급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서 "외형상 1급과 2급의 차이점은 있을 수 있지만 국세청을 보면 업무중심 즉, 직급보다 직책이 중심이다 보니 1급의 의미보다는 지방청장이라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 이승호 청장, 그가 기억하는 국세청

이 청장은 그간의 공직생활을 뒤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일화를 전했다.

우선 사무관시절 대구국세청 소득세과장을 역임하며 IMF라는 힘든 시기를 납세자들과 함께 버티던 추억을 떠올렸다.  

이 청장은 "IMF사태 직후였는데 소득세 신고관리를 하면서 기장신고자들의 관리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납세자들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같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또 조사국 과장 시절, 법인조사 시 주식변동조사를 같이 통합해 진행하도록 조사지침을 만든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지금은 당연히 법인조사 시 주식변동조사를 같이 하지만 당시에는 업무과다 문제로 조사반에서 꺼려했다는 것.

이 청장은 "업무량이 많아져 조사반은 불평했지만 당시 조사지침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적지않은 의미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원천세 과장 시절에는 의료업자들의 연말정산간소화자료 제출에 대한 헌법소원 문제가 맞물리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의료업자들의 불편사항을 국세청에서 많이 수용하고, 시행령 개정과 같은 문제도 엮여 있었지만 운 좋게 연말정산간소화 문제는 당시 원천세 직원들이 고생한 덕분에 잘 해결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징그럽게 했다. 진짜 징그럽게 했다"

이 청장은 언제 국세청에 입사했냐는 질문에 39년을 일했다며 "징그럽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대답은 국세공무원이라는 자부심과 국세청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이 청장은 '조사통'이다. 경력 16년의 조사 전문가로 합리적이고 소신 있는 업무 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재직 시 세원정보 자료 등 정밀 분석을 통해 조사대상자를 엄선하고 주요 업종별 조사 전문 인력을 집중 활용해 조 성과를 극대화하는 등 조사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그를 아는 국세청 직원들은 주식변동조사를 내실화해 대재산가의 부도덕한 탈세행위와 변칙적 부의 대물림에 효율적으로 대응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 청장은 조사국의 애로사항에 대해 "납세자와 조사국은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다소 아이러니한 답변을 내놓았다. 실제 조사반이 조사를 나가면 납세자가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이 결국 조사반에게도 가장 힘이 든다는 것.

이 청장은 "조사반 직원들은 주어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추징을 하지만 직원도 사람이다 보니 납세자의 어려운 입장을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을 안 하고 끝낼 수는 없으니 결국 납세자와 조사반 직원들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청장은 또 "조사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세청 전체 입장에서 여비, 교통비가 부족한 문제점이 있다"며 "국세청 직원들이 법령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예산이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세청 정원 외에 인력이 최소 10%이상 늘 교육 시스템에 들어가 있다면 부실부과에 대한 문제가 해소될 수 있고 납세자들은 더 세련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또 인생에 정답도 없다. 멀리 보고 장기레이스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느긋하게 삶을 꾸리면 좋겠다. 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매사에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이승호 부산국세청장은…

▲1956년생 ▲경북 청도 ▲대구농림고 ▲영남대 경제학과, 경북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7급 공채 ▲구미세무서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조사3과장, 서울지방국세청 총무과장, 국세청 원천세과장, 국세청 조사1과장, 부산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중부지방국세청 조사3국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 부산지방국세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