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방은행은 이제 21세기 글로벌 금융시대를 맞아 고민에 빠져있다.
최근 들어 이익이나 성장률 부분에서 시중은행에 뒤지지 않는 성적을 내고는 있지만 IMF 직전 총 1305곳이었던 지점이 지난해 834개로 줄어드는 등의 위기상황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의 앞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중은행과 같이 대형화를 꾀하는 방법과, 과거처럼 지역영업에 머무는 두 갈래 길이 놓여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막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수합병 등을 통해 대형화를 실현한다면 지방은행이라는 특성을 무시하게 되는 셈이며, 현재의 영업방식에 머무를 경우 글로벌 자본의 규모의 경제 앞에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 갈림길의 지방은행…해법은 어디에? =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은행의 대형화에 대해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 금융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은행들이 영업규모를 확대해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해지면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은행별로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의 권역을 침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강 국장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시중은행, 정책금융기관, 지방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대부업체 등으로 나뉘어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지방은행이 대형화를 꾀할 필요가 없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방은행들은 지금으로서도 지역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금융업이란 산업이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무조건 유리한 것은 아니고 자금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며 "대형은행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역할을 지방은행 맡아 균형성장을 해가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 "지역민과 상생하는 구조 만들어야" = 채지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지방은행이 지역경제와 함께 상생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들 수 있는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77년부터 지역재투자법(Commodity Reinvestment Act; CRA)을 도입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지역경제에서 금융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소득계층 및 지역 소규모 사업자 등에 지원하게 한 바 있다.
금융기관이 해당 지역의 주택 담보 대출 및 소규모 사업자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영세 농민을 지원하게 유도해 지역 예금 수취기관이 지역개발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법률이다.
네덜란드의 라보은행(Rabo Bank)도 지역금융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라보은행은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던 19세기 중반, 지역민들에 대한 협동조합은행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역사를 시작했다.
1950년대부터 농촌 지역 중소기업에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이들에게 저축 및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은 라보은행 역사의 큰 획이다.
이후 라보은행은 조합원이 아닌 개인 고객들에게도 저축 계좌를 제공해서 일반 상업은행들과 경쟁을 벌였고, 결국 소매금융부문에서 네덜란드 금융계의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현재 네덜란드 국민의 절반이 라보은행의 조합원이고, 자산규모는 세계 20위권에 올라있다.
이에 대해 채지윤 연구원은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대출을 주업으로 하는 은행과 일반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률이 사실상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지역개발은행은 비단 수익성뿐 아니라 중장기적 측면에서 지역 경제에 더 큰 성과를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지방은행들은 그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적합하다"면서 지방은행이 토착화를 지속한다면 시중은행의 논리로는 접근할 수 없는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