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산업은행, 청와대 검증지연으로 전무 인사 연기
금융권, 정치권의 지나친 임원인사 관여 우려 '와글'
조준희 전 은행장부터 이어 오던 기업은행의 '원샷인사'가 처음으로 깨질 위기에 처하는 등 금융권의 인사지연 문제가 점점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다.
14일 기업은행의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13일 예고됐던 연기된 정기인사가 14일 오후에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정기인사 발표를 늦추는 주요 원인이 되었던 전무(수석부행장) 인사는 이번 발표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행은 인사시즌 직원들의 불필요한 동요를 막기 위해 하루만에 전 직원에 대한 인사를 진행하는 '원샷인사'를 진행, 금융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 전무인사가 청와대 검증이 끝나지 않아 발표가 지연되며, 사실상 '원샷인사'가 깨질 위기에 처했다. 추후 전무 인사가 이뤄지더라도 이로 인한 부행장 등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임원인사를 추가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
기업은행에서 조 전 은행장부터 진행된 '원샷인사'의 원칙이 깨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은행 전무인사는 은행장의 제청으로 금융위원장이 임명하게 되는 수순을 밟지만 인사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청와대의 의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기업은행 전무 후보로 이야기되는 인물은 내부출신의 박춘홍, 안동규, 안홍렬 부행장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인사검증 과정에서 기업은행 출신의 외부인사가 거론되며 복잡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는 전언도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인사는 순리대로 하는 것 아니냐. 상급기관에서 하는 일에 우리가 토를 달 수도 없고 답답할 뿐이다"고 전했다.
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미 직원들은 이번 정기인사에서 누가 어디에 가는지 대충 다 알고 있다"며 "결국 전무 인사가 지체되며 나머지 직원들이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수석부행장 인선이 막혀 있기는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산은은 지난 13일 임기가 만료된 수석부행장과 부행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려 했지만 결국 부행장 4명에 대한 인선만을 완료했다.
금융위가 제청한 인물을 청와대 측이 거부해 인물 재탐색에 나서게 됐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부행장과 수석부행장의 인선을 한번에 단행하려했는데 갑작스레 이렇게 됐다"면서 "임기가 끝나신 수석부행장님을 위한 이임식을 준비했는데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퇴임식이 돼 버렸다"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산은 인사부서 직원은 "일반적으로 인사는 고위 임원들 자리가 확정돼야 본부나 실급의 하위 인선도 진행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수석부행장 인선이 막혀 일반 직원들 인사도 함께 정체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임원선임에 대한 것은 인사부에서 정하지 않는다. 윗선에서 내려오는 대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 향후 일정에 관해서도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금융권의 인사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으며, 빠른 인사를 통해 인사시즌 전후의 불필요한 업무공백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공수표가 되고 있다.
인사지체는 비단 은행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재 금융위 고위공무원단(옛 1~2급) 인사는 지난해 이후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임위원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제청 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지만 관가 안팎에서는 사실상 청와대 입김이 많이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국무조정실 1급의 일괄 사표 소식이 전해지며 내부적으로 동요가 있었다"며 "실제로 개각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예전과 다르게 국장급도 사표를 내야 하나 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고승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이와 관련 "인사는 이달 중 있을 것이나 상임위원별로 따로따로 나뉘어 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현재 금융위는 상임위원, 증권선물위 상임위원이 공석인 상태가 쭉 이어져오고 있다.
금융권의 한 임원은 "이 같은 금융권의 인사지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다"며 "인사라는 게 직원들이 예측이 가능해야 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정치권에서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려다 보니 이처럼 무기한 지연되고 있는 거다"며 일침을 놓았다.
그는 "그동안 조직 내에서 쌓아온 경험이 무시되고 소위 정치권에 줄을 댄 '끗발'이 좋은 인물을 고르는 인사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며 "금융권도 조직 내부에 최고경영자 및 임원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거기에서 사람을 뽑도록 제도화해 인사로 인한 불필요한 문제들을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시중은행 인사담당 임원 출신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이 예측 가능한 인사를 해야 조직이 안정된다"며 "불필요하게 정치권에서 인사에 관여하려 하면 조직이 분열되는 등 부작용이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