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정부 5개 부처가 발표한 '가계 부채 대책'이 시장으로부터 싸늘한 반응을 얻고 있다.
'소득을 늘리고 부채를 현상 유지하는' 기본 방향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가계와 기업의 소비경제를 살리고 경제 활력을 되찾겠다는 본래의 목적에서는 한참 빗나갔다는 평가다.
■ 변동금리→고정금리, 지나친 탁상행정 논리?=정부는 고용률 인상과 일자리 안정을 통해서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동시에 대출 상환 방식을 바꿔 가계의 부담이 줄어들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대출 상환 방식의 차이이다. 현행 '변동금리·일시상환' 위주의 대출 상환 방식은 과거 금리가 계속해서 인하되며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 은행, 차주 모두에게 유리했다.
기준 금리가 내려갈수록 대출금리도 내려가 이자 부담이 줄었고 대출 만기 시 집값이 올라 있는 경우가 많아서 원금을 갚는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경기부양 정책이 후퇴하는 상황에서는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 이를 고정금리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그렇지만 금리 예측이 어렵고 변동금리에 비해 고정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을 감안하면 당장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나, 은행이 손님에게 당장 이자가 늘어날 것을 감수하고 고정금리로 변경하라고 권유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주택담보대출 중 상당수가 일시상환 방식인 점을 볼 때 장기간 상환 전략을 짜기가 쉽지 않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일시상환을 분할상환으로 바꾸고 10~20년 장기간 갚아 나갈 때 고정금리가 유리하다. 분할상환으로 변경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은행이나 대출 상품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했다.
시중은행의 경우 대부분 변경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저축은행, 지방은행, 상호금융조합 등 금융회사들은 어렵다고 금융위원회 측은 전했다.
■ 기대 모은 종합 대책, 소비자가 달라지는 것은?= 30대 직장인 A씨는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민간 소비를 살리는 것인데 대출을 받은 입장에서 달라지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가계 부채 대책의 내용에 실망이 크다는 반응이다.
이번 대책 중 정책적 측면이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바뀌는 것은 전환 대출 허용이나 대출이자의 소득공제 확대이다.
전환 대출은 제2금융권 대출을 장기간 분할상환 방식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연간 소득 5000만원 이하, 주택 가격 3억원 이하 등 요건이 까다롭고 신청 이후 심사를 통해 선별적으로 지원한다.
소득공제는 대출 만기가 15년 이상인 경우 한도를 현행 연 1500만원에서 1800원까지 확대하고, 10~15년이면 첫 혜택을 준다. 이때 한도는 정해지지 않았다.
A씨는 "기대를 했다가 막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국민을 위한 대책이 맞나 싶다. 마치 말장난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정부 당국 관계자는 "소득공제는 세수 측면에서 볼 때 파격적인 수준으로 확대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 부동산 정책·가계 부채 대책, 영원한 딜레마= 지난 2011년 이후 3차례 연이어 나온 가계 부채 대책이 이처럼 시장에 시그널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부동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하는 국토교통부는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출 팽창을 억제해 은행 건전성을 지켜야 하는 금융위원회에서는 대출을 확대한다고 부동산이 살아나지 않을 것이란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값에 비례해 대출 한도를 정하는 주택담보 대출비율(LTV)이나 소득 대비 부채 비율(DTI)은 부동산 경기를 살릴 뿐 아니라 가계 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카드이다.
만일 LTV나 DTI를 늘리면 부동산 매매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줄이면 대출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2011년 대책 이후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는 가계 부채 비율을 진정시키긴 했으나 지난해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취득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다시 가계 부채가 늘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한 해 증가한 가계 부채는 총 57조5000억원.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의 대출은 2012년 1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7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