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식 회장은 "어머니는 내게 늘 '너는 잘할 수 있다', '너는 최고다'라고 말씀하셨다. 때로는 태몽 얘기를 해 주시면서 너는 잘될거라고 늘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셨다"며 용기를 주신 어머니의 사랑을 회고했다. (사진 = 김용진 기자)
‘어렸을 때는 동상에 걸린 내 손을 낫게 하시려고 온갖 약을 구하려 애쓰셨다. 명절에 동네에서 소를 잡으면 어떻게 해서든 소 내장을 구해서 동상에 특효라고, 거기에 손을 담그라고 하셨다. 그때는 정말 싫었는데…….’
박점식(59) 천지세무법인 회장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정리한 에세이집 ‘어머니’를 출간했다.
‘부치지 못한 1000통의 감사편지’를 부제로 단 이 에세이집은 하의도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섬 소년이 50을 넘긴 나이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단상을 하나하나 모았다.
한평생 외아들이 잘되기만 바라며 억척같이 사느라 고단하고 지친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계신 모습을 보면서 감사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어머니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겠지만 삶의 끈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 주셔서 감사’할 뿐만 아니라 ‘정신이 혼미한 지금도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내 아들 ” 하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박 회장은 썼다.
처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편지 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여 가지를 쓰고부터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무엇을 써야할지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덜컥 걱정이 됐다. 저녁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서둘러 귀가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어느 순간부터 실타래 풀리 듯 생각의 끈이 줄줄이 떠올랐다. 글쓰기에 몰입하다보니 두 달 새 700통이나 됐다.
‘어머니는 내게 늘 “너는 잘할 수 있다”, “너는 최고다”라고 말씀하셨다. 때로는 태몽 얘기를 해 주시면서 너는 잘될거라고 늘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셨다. 초등학교 때는 매로, 중학교 때는 말씀으로 나무랐지만, 그 이후에는 나를 믿고 전혀 간섭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를 믿으셔서 그랬을까? 믿어서라기보다는 요즈음 용어로 넛지효과를 주셨다. 내가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나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어린 박점식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어머니는 그가 어른이 돼서도 자식에 대한 염려와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제주도 여행 때 내가 직접 차를 몰아 평소 가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의 명소와 맛집을 찾아다녔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정말 기쁘셨던 이유는, 내가 운전하느라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어머니는 자식을 마음에 품고 계셨다.
‘의식이 가물가물할 때마저도 어머니는 나를 어려워하셨던 것 같다. 나에게는 별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서 간병하는 아주머니에게는 내가 왜 안 오느냐고 찾곤 하셨단다. 막상 가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그냥 아들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박 회장이 700통의 감사편지를 썼을 무렵 어머니와 영원한 작별을 했다. 그동안 써온 감사편지를 어머니 옆에 같이 묻었다. 그리곤 왜 그리도 감사할 일 많은지 300통을 더 기록했다.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꼬리를 물고 감사 거리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 책으로 나왔다.
책을 만들면서 교정을 위해 감사편지를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느낌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고 그는 술회했다. 어머니가 그 때 왜 그리 하셨는지 궁금증이 생겼지만 글을 쓸 때는 정작 전혀 느끼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종종 선생님 댁을 방문해 일을 도와 드렸는데 왜 어머니는 매번 자신을 데려 가셨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건대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라는 깊은 뜻에서였을 것이리라. 어머니는 맹모삼천지교를 몸소 실천하셨던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처지를 비관해 술·담배를 시작했을 때도 왜 어머니는 매를 들지 않고 묵묵히 모른 체 하셨는지도 묻고 싶다. 아마도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셨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1000 감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면서 "우둔한 제가 어머니의 큰 사랑과, 한결같은 신뢰를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 깨달음으로 저는 과연 어떤 아빠인가를 생각해 봤고, 어머니를 도저히 따라 잡을 수는 없지만 길잡이로 삼을 수는 있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감사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으로 “매일 다섯 가지씩 감사한 일을 적으면 3주 만에 뇌가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글을 읽고 부터다. 반년쯤 감사일기를 쓰다가 연말 임원부부모임에서 부인에 대한 100가지 감사편지를 쓰도록 했더니 모두들 훌륭하게 써왔다.
다음해 들어서는 직원들이 고객에 대한 100가지 감사편지를 쓴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감사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박 회장은 ‘무식하게’ 감사운동을 전개했다. 고액 개인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그는 세무사계에서 감사운동 전도사로 통한다.
감사일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하는 박 회장은 “감사쓰기가 습관이 되면서 감사일기의 내용이 점차 구체화되고 풍부해졌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감사한 일이 발견되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이런 소중한 감사를 생각해 낼 수 있음에 행복해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감사가 일상화 되면서 그는 모든 문제를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갈등의 원인을 상대에서 찾기보다는 내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는 그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의 상당 부분은 내가 가진 기대감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었고 이런 갈등의 원인이 제거되자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감사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감사는 상대를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다. 감사는 나를 찾아가는 기쁨의 과정이어야 한다. 상대의 긍정과 부정을 모두 아우르는 마음, 즉 나 자신의 내면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과정인 것이다’
박 회장의 감사철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