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강도 높은 '규제개혁' 카드를 꺼내들었다. 기업들과 국민들의 역량이 뛰어나도 '암덩어리' 같은 규제들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면 경제 활성화는 머나먼 얘기라는 것이 핵심요지다.
사실 세법은 규제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다만 이는 사전적 범주일 뿐이며 현실에서의 세법은 국민과 기업 등에 '규제'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잘못된 세법은 국민의 개개인의 생활, 개별기업의 경영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는 내국세와 관세 등 세법 속 개혁해야 할 규제들을 선별해 개선을 촉구하는 [캠페인]세법 속 '규제', 이것만은 고치자 시리즈를 연중기획으로 보도한다. -편집자주-
#. 해외에서 5년여 동안 거주하다 국내로 들어오는 A씨는 쓰던 살림살이들을 전부 내다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국내에 이사와서도 사용하려고 마음 먹고 장만한 한국산 냉장고와 TV, 식기세척기 등이 '면세기준'을 초과해 수 백만원의 세금을 내야할 형편에 처했기 때문이다.
#. 이사화물을 신고하려던 B씨는 출입국사실증명서를 서면제출하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다. 정부기관에서 여행자들의 출입국 정보를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개인에게 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라는 세관의 요구가 불합리하다고 판단, B씨의 항의에도 세관은 개인정보보호 규정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들이 고품질의 TV와 냉장고 등을 생산,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지만 이런 추세가 무색하게도 이사화물 통관을 할 때는 세금을 고스란히 물어야 하는 낡은 규제에 발목잡히고 있는 해외거주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세관에서 출입국 정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 이사화물 통관을 할 때 서면으로 출입국사실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사화물이란 해외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이나(준이사자)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이사자)이 국내에 입국할 때 들여오는 생활용품 등으로 이사화물로 인정되면 통관 시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사화물 통관건수는 2011년 4만3819건, 2012년 4만1009건, 2013년 4만1586건으로 매년 4만건 이상을 유지하는 등 규모면에서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일부 해외거주자들이 이런 제도를 악용해 새로 산 물건을 이사화물이라고 속여 반입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면서 세관에서는 이사화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과 이사자 기준도 엄격히 제한해 놓고 있다.
취지는 탈세를 막고자 하는 규제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과거 기준에 머무르고 있는 이사화물 통관 규정 때문에 세관과 이사자들간의 불필요한 '시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 대형 TV·냉장고는 꿈도 꾸지 마라? = TV와 냉장고는 이사자의 이사물품으로 인정받는 면세대상 물품이지만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국내로 들여올 때 무조건 세금을 물어야 한다.
TV의 경우 63인치, 냉장고의 경우 용량 600ℓ가 초과되면 동반가족수에 따라 면세를 받을 수 있다. 이를 포함해 냉동고,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가스오븐렌지, 고급가구(500만원 초과), 카페트(200만원 초과) 등은 1~2명의 동반가족일 경우 1개, 3~4명의 경우 2개, 5~8명의 경우 3개, 9~12명의 경우 4개까지 면세를 받을 수 있다.
다만 TV는 1인당 1개까지 면세를 받을 수 있다. 4인 가구가 이사자와 동반가족으로 입국시 600ℓ 초과 냉장고와 63인치 초과 TV, 가스오븐렌지, 세탁기를 이사화물로 들고 온다면 2개의 가전제품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 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세탁기나 가스오븐렌지는 물론 63인치 초과 TV, 600ℓ 초과 냉장고를 '사치품'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일선 세관에서는 이에 따른 이사자들의 민원이 많이 접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전이 대형화 됨에 따라 흔히 구매하는 양문형 냉장고의 크기는 대개 800ℓ에서 900ℓ 정도이며 실제 전자제품 판매로 유명한 'D' 사이트의 4월 3주차 냉장고 판매순위 1~5위까지의 제품이 모두 800~900ℓ 크기였다.
600ℓ 이하의 냉장고는 냉동실과 냉장실이 위 아래로 나눠져 있는 일반형 냉장고가 대부분이었다.
TV의 경우에는 국내에서는 42~47인치의 판매가 대세를 이루지만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가 지난해 전세계 판매된 LCD TV 판매량을 보면 40~44인치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60인치 이상 제품은 1분기 77.3%, 2분기 97.8%, 3분기 78%, 4분기 51.9%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관세청에서도 이런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142개 규제개혁 과제 중 TV와 냉장고, 베이비그랜드피아노 등을 면세품으로 인정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 관계자는 "가전이 대형화 됨에 따라 TV와 냉장고에 대한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사화물 통관을 하는 세관에서는 이로 인해 많은 민원에 시달렸다"며 "TV와 냉장고를 비롯한 이사물품 기준을 전면 재검토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보유정보 '무용지물'…年 1.2억 '허공'으로 = 이사화물 통관 시 출입국사실증명서를 제출하라는 세관의 요구도 개혁해야 할 대표적인 규제로 꼽히고 있다.
관세청은 법무부로부터 여행자의 출입국 정보를 받고 있지만 이것이 민감한 개인정보이다보니, 본인 외에는 정보접근이 쉽지 않았고 세관에서조차 이 정보를 활용할 수 없었다.
세관은 법무부로부터 여행자의 출입국 정보를 받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여행자에게 직접 출입국사실증명서를 제출하라는 이해하지 못할 규정을 수년째 유지해 오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불합리한 규정으로 4만명 이상의 이사자들은 출입국사실증명서를 발급해 제출해야 하는 수수료와 교통비 등으로 연간 1억2000만원의 비용이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관세청은 세관 직원들이 여행자정보 시스템에 접속해 이사자의 출입국 조회를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규제개혁 과제로 선정, 오는 6월까지 해당 고시를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 탈 많은 '車' 통관, 규제개혁에서 왜 빠졌나? = 이사화물 통관 시 1등을 차지하는 민원을 꼽으라면 단연 '자동차' 통관이다. 자동차에 적용되는 감각상각과 높은 세율을 비롯해 같은 차종이라도 생산지에 따라 면세 대상 여부가 결정돼 이사자들의 오해와 불만이 가장 많은 품목 중 하나다.
이사자들이 가장 많이 오해를 하는 부분은 국내 브랜드의 차량이라면 무조건 면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내 브랜드의 차량이라도 해외에서 생산됐다면 관세와 부가세 등을 내야 하며 국내에서 생산된 차량은 세금이 면제된다.
자동차는 관세와 개별소비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내야할 세금도 많아 면세기준에서 탈락되면 이사자들의 반발도 상당히 거센 편이다. 2000cc 초과 자동차의 경우 과세가격｛(신차가격X감가상각)+운임+보험료｝에 29.61%, 1000~2000cc 차량은 26.52%, 1000cc 차량은 18.8%다.
2000cc 차량의 과세과격이 2000만원이라면 약 600만원 정도의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이사자들의 항의와 반발이 거셀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관세청은 자동차와 관련한 통관 부문에 대해선 규제개혁 과제에서 제외시켰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사자의 자동차 통관 규정을 규제개혁 과제로 삼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이사물품으로 인정받으면 자동차 안전관리검사가 면제되는데 안전하지 않은 자동차가 국내로 들어온다면 안전사고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