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증가율>가계소득 증가율
부동산·금융자산 동반 하락..자산 디플레 가능성
금리인상시 이자부담↑..소비위축·내수침체 우려
작곡가 이모씨(35)는 앞으로 받게 될 저작권료를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연 10%에 1억원을 대출받았다. 이씨는 대출받은 돈으로 주식을 산 뒤, 재차 연 3.5%(수수로 1.5% 별도)에 6개월 만기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그는 “주식투자를 잘 해서 대출이자보다 많이 벌면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라고 말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빚테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경기가 더디게 회복되면서 주식이나 부동산 등 가계의 주요 자산들의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대두된다. 일각에선 자산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온다. 빚으로 지탱해온 자산가격이 꺼질 경우 가계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 가계 ‘빚 중독’..자산 디플레이션 우려
‘빚테크’가 성공적인 재테크가 되면 다행이지만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 회복세가 미약해 자칫 잘못하면 자산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2일 한국은행 및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수도권 주택매매 가격은 2012년 3.0% 하락한데 이어 2013년에도 1.4% 떨어졌다. 올해 들어서도 1~4월 0.47% 상승하는데 그쳤다. 김민석 KB국민은행 과장은 “올 들어 3월까지 상승하는가 했으나, 4월 들어 상승폭이 둔화됐다. 이번 달에도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돼 시장이 다시 냉각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주식시장도 코스피지수가 최근 2000포인트를 넘어섰으나, 삼성전자와 현대차 효과를 제외하면 1500포인트 수준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양원근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은 “주택 및 주식가격 하락이 자산 디플레이션 전조현상이 아닌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자산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금융이 실물경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통화위축, 물가하락, 경기침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계부채·순본원소득 잔액(좌) 및 증감률<자료=한국은행>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가계소득보다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어 이같은 우려를 더욱 키운다. 한은에 따르면 2013년말 현재 가계부채(가계신용)는 1021조3000억원으로 2010년말 843조2000억원 대비 21.1%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의 순본원소득(감가상각 제외 국민순소득) 잔액은 723조4000억원에서 831조9000억원으로 15.0% 늘어났다.
연도별로도 가계소득 증가율(전년대비)이 2011년 6.0%, 2012년 4.4%, 2013년 3.9%로 매년 하락하고 있는 반면,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1년 8.7%에서 2012년 5.2%로 둔화된 뒤 2013년 다시 6.0% 상승세로 돌아섰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는데 따른 부작용으로 풀이된다.
유경원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빚이 있으면 문제가 있다는 과거 인식과 달리, 지금은 빚을 제대로 활용 못하면 금융문맹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관대해졌다”며 “빚은 한 번 내기 시작하면 계속 지는 지속성이 있는데, 예금금리가 낮아 빚을 내 자산을 늘리려는 심리에 부동산 대책을 비롯한 각종 가계부채 관련 정부정책 등으로 부채 접근성이 높아진 것이 겹쳤다”고 설명했다.
◇ 빚에 기댄 자산가격..금리 인상 겹치면?
‘빚테크’가 성공하려면 경기가 회복되면서 소득이 늘고 자산가격이 올라 빚을 갚을 능력이 함께 커져야 한다. 그러나 경기회복세가 약해 오히려 자산가격이 하락할 우려가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가계 자산이 상당부분 빚으로 지탱되고 있다보니 가계가 빚을 줄이려면 자산가격이 하락하는 딜레마에 부딪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이 2013년말 현재 418조원에 달한다.
양 연구위원은 “저성장, 저물가 지속 요인이 존재하고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자산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특히 부채감축 압력을 받는 가계가 주택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유 교수는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아 정부가 이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자산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또다른 빚으로 자산 가격을 지탱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금리가 오르면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 연구위원은 “소득증가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부채를 통한 소비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자산 디플레이션 발생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도 “부채가 많은 가구는 금융자산이 적어 유동성 측면에서 재무건전성이 취약하다”며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향후 금리가 오를 경우 이자상환부담 확대에 따른 소비위축 및 내수침체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채무조정기금 확대 등 제도권 밖 채무자보호를 강화하고, 가계소득과 관련, 누진세, 사회보장지출 등과 같은 재분배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