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일보-김앤장 법률사무소 공동기획]
신탁세제 낡은 채 그대로… 전문가 조언 절실
2012년 7월 시행된 신탁법으로 유언대용신탁과 수익자연속신탁 등 새로운 신탁제도가 도입됐음은 이 코너 제4편에서 언급된 바와 같다(5월19일자 참조). 이에 따라 상속수단으로서의 신탁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모 시중은행이 XX Living Trust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유언대용신탁상품의 수탁고가 2300억원에 달했다는 보도는 그런 관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꼭 상속인이 아니라도 손자나 제3자를 상속재산의 수익자로 지정할 수 있어 재산의 관리‧운용‧수익 귀속에 있어서 탄력적 설계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투자 목적으로 금전이나 부동산을 전문신탁업자에게 신탁하는 상사신탁이 대종을 이룬다. 법률가‧금융전문가 또는 믿을만한 친지를 수탁자로 하여 신탁재산을 운용하고 수익을 귀속시키는 개별 민사신탁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왜 그럴까. 우선은 신탁제도가 가부장적 문화와 그리 친하지는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세제상 혜택은 커녕 재산신탁이나 신탁이익에 대한 과세기준조차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아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개정 신탁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었음에도 신탁 관련 세제는 예전 그대로다. 하드웨어는 새 것으로 바뀌어졌으나 소프트웨어는 구형인 꼴이다.
신탁은 양도가 아니다
신탁이 설정되면 신탁목적물의 소유권이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이전된다. 목적물이 부동산이나 주식 등 양도소득세 과세대상 자산이면 양도소득세가 과세될까. 소득세법은 ‘양도’를 재산의 소유권이 유상으로 사실상 이전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반면 신탁목적물의 소유권이 위탁자로부터 수탁자로 이전되는 것은 신탁의 본질상 형식적 소유권 이전에 불과하다. 양도의 정의에 포섭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신탁 재산의 소유권이 이전된다 하더라도 양도소득세는 부과되지 않는다. 행정해석도 같은 입장이다. 다만 신탁등기를 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사실상 유상 이전되고 신탁원부의 수익자명의가 변경되면 위탁자가 부동산 그 자체를 양도한 것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
신탁소득은 소득세 납부가 원칙
신탁재산에서 생긴 소득에 대한 소득세는 누가 부담하는가. 미국세법은 신탁재산에서 생긴 소득에 관한 납세의무를 신탁(Trust) 그 자체에 지우되, 신탁이 수익자에게 분배한 금액은 신탁 그 자체의 과세소득 계산시 이를 비용으로 공제하도록 한다. 신탁 그 자체를 별개의 납세단위로 본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소득세법은 수익자가 납세의무를 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은 수익자의 것으로 보되 수익자가 불분명한 경우에만 위탁자나 그 상속인의 것으로 본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수익자를 위탁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지정한 타익(他益)신탁의 경우 그 수익자는 신탁이익에 대한 소득세 납세의무를 져야 한다.
수익자는 타익신탁의 이익 상당액을 가만히 앉아서 번다. 증여세 납세의무가 문제될 수 있는 대목이다. 행정해석과 조세심판 결정례는 수익자가 신탁이익에 대하여 소득세를 납부했다 하더라도 증여세 납세의무는 별개의 것이므로 이중과세는 아니라고 한다. 수증자가 증여재산에 대해 소득세를 납부했으면,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와 같은 특례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현행 상속‧증여세법 제2조 제2항에 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수익자의 신탁소득에 소득세와 증여세 부과는 이중과세?
위탁자가 타인을 신탁의 이익을 받을 수익자로 지정한 경우 그 수익권의 가액은 증여재산가액을 구성, 증여세과세대상이 된다. 증여시기는 원칙적으로 신탁원본 또는 수익이 수익자에게 지급되는 때이다. 다만 신탁이익의 지급 전에 위탁자가 사망하면 사망일에 지급된 것으로 본다.
신탁재산의 원본이나 수익을 신탁기간에 걸쳐 분할 지급받기로 했으나 신탁계약 체결일현재 원본 또는 수익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 원본 또는 수익의 실제 분할지급일이 증여시기가 된다. 반면 그 금액이 미리 정해진 신탁의 원본이나 이익을 수차에 걸쳐 분할지급 받는 때는 최초 분할지급일에 증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이처럼 최초 분할지급일에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보는 경우에는 장래에 지급받을 원본 또는 이익의 상당액을 연 10% 할인율로 할인한 현재가치금액도 증여재산가액에 포함된다.
예를들어보자. 10억원의 신탁재산을 2014년 7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 10년간 자산원본의 수익자는 위탁자 자신, 신탁이익(연 9% 약정)의 수익자는 아들로 하여 매년 6월말에 지급하기로 한 신탁계약을 가정해보자. 이 경우 증여시기는 신탁이익이 최초 지급되는 2015년 6월 30일이다. 증여세과세가액은 향후 받게 될 9회분 신탁이익의 현재가치를 포함, 약 4억 7600만원 정도가 된다. 수익자가 매년 지급받을 9%의 신탁이익에 소득세를 부과함에도 4억 7600만원에 증여세를 부과함은 이중과세이므로 부당하다는 견해가 있음은 앞서 언급된 바와 같다.
신탁재산은 물론 신탁의 이익을 받을 권리도 상속재산
피상속인이 신탁한 재산은 상속재산에 포함되어 상속세가 과세된다. 신탁재산으로 이전된 재산이라 하더라도 위탁자(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다만 신탁계약에 따라 타인을 신탁이익의 수익자로 지정한 경우에는 그 이익 상당액은 현재가치로 평가하여 상속재산가액에서 공제한다. 취소불능신탁으로서 신탁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위탁자가 행사하지 아니할 경우 신탁시점에서 위탁자와 분리된 재산으로 보아 위탁자의 상속재산에서 제외시키는 미국세법과는 사뭇 다른 양태다.
거꾸로 피상속인이 타인에 의해 설정된 신탁의 수익자로 지정돼 있는 경우 현재가치로 평가된 신탁이익 상당액이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다만 수익자로 지정된 자가 신탁이익 수령일 전에 사망하면 그 신탁이익은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경우에는 상속인이 신탁이익을 지급받을 때 증여세를 물게 된다.
신탁의 현실적 활용 가능성
현행 세법상 신탁에 관한 세제상 특혜는 없다. 그럼에도 신탁이 상속이나 증여 목적에 활용될 가치는 여전히 크다. 우선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여 상속인 외에 손자나 다른 친족이 상속재산의 원본이나 이익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지정해 둘 수 있다. 수익자연속신탁을 통해 1차 수익자 외에 2차 수익자를 지정할 수도 있다. 신탁을 통해 생전은 물론 사후의 재산관리에 관해 위탁자 본인의 의지를 적극 반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신탁재산 원본의 수익권과 신탁이익의 수익권을 분리한 후 신탁이익(운용소득)을 자녀들에게 분산 귀속시키면, 신탁원본에 대한 당장의 증여세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운용소득에 낮은 누진세율이 적용되어 소득세 부담도 준다. 아버지가 보유주식을 20년간 신탁하면서 생전에는 원본 수익자를 본인으로, 사망시에는 상속인으로 각 지정하되, 자녀들을 신탁의 이익(배당금)의 수익자로 지정하는 경우가 그 예이다.
그 경우 아버지 생전에는 아버지가 수탁자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해 회사를 지배할 수 있고, 사망 시 시간적 공백 없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시킬 수 있다. 신탁이익(배당금)은 수익자인 자녀 각자의 수증재산을 구성하므로 증여세 과세대상이 된다. 그러나 신탁계약 체결일 현재는 신탁이익(배당금)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증여세는 실제 배당금 수령일에 납부하면 된다. 신탁시점에는 신탁이익(배당금)에 대하여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다만 이중과세 논란은 있으나, 신탁이익(배당금)에는 증여세와 아울러 소득세도 부과될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무릇 경제인이 경제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조세 외적 목적과 조세 목적 모두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마련이다. 신탁이라는 대안은 상속개시 후 상속재산, 특히 경영권의 원활한 승계나 상속분쟁 예방 목적에는 안성맞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세 목적에 신탁을 활용하는 것은 아직 그 효과가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예측가능성 측면에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신탁 활용 전에 신탁법과 세법을 아우르는 전문가의 조언을 미리 구해야 할 이유이다.공동집필 정병문 변호사·양규원 공인회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