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으로 대상기업 줄고 합병 등 편법 동원 빠져나가
지난해 4월 감사원의 ‘재벌기업 일감몰아주기 관행에 대한 소급과세 권고’로 촉발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논란이 공정거래법에 관련 규정을 제도화되면서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재벌에게 빠져나갈 구실만 만들어 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법의 허점과 기업들의 편법으로 통해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걸려든 기업들에 대한 세수도 많아야 1000억원~2000억원 사이에 그칠 것으로 추산되어 일감몰아주기 증여세의 실효성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선 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 지나치게 폭넓은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법 제23조의2(특수 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①항은 일정규모 이상의 자산총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는 특수 관계인을 그 친족으로 한정했다.
즉 총수일가나 총수일가가 일정 수준이상의 지분을 가진 계열사와의 거래에만 적용토록 적용범위를 축소, 이 규정만으로 최초 규제대상 62개 대기업 집단 1768 기업이 4분의1인 417개 기업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①항 2목은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하여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한 행위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 간접 지배하에 있는 경우는 제외했다.
이밖에도 제②항 및 시행령도 ‘수직계열화 등 경영상 효율성이 인정되는 경우’와 ‘영업상 기밀 등 보안상 이유로 내부거래가 필요할 경우’를 제외함으로써 일감몰아주기 행위를 처벌할 수 없도록 구멍을 만들어 줬다.
한편 이러한 제도적 미비점 외에 기업들 또한 일감몰아주기 자체를 줄이는 대신 돌아가는 편법을 사용한 것도 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또 다른 요소였다. 계열사 간 합병이나 사업조정을 통해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거나 형식적인 외부자본을 유치해 오너 일가의 지분을 축소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자료:재벌닷컴
우선 규제대상 계열사를 가장 많이 줄인 곳은 GS그룹으로 방계회사인 승산레저와 STS로지틱스를 승산에 합병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규제대상 회사를 2012년 13개에서 지난해에는 10개로 줄였다. STS로지틱스는 매출 100%를 방계회사인 GS칼텍스의 일감으로 채우는 회사다.
삼성그룹은 삼성SNS와 삼성SDS의 합병을 통해 이재용 부사장의 지분율을 규제기준인 20% 이하인 11.25%까지 낮췄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분 사장도 삼성SNS지분율을 각각 4.18%에서 3.9%로 희석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도 역시 규제를 피할 수 있게 해줬다. 삼성석유화학 지분 33.18%를 보유하고 있던 이부진 사장은 합병을 통해 지분율이 4.91%로 낮아지게 되어 공정위의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밖에도 제일모직과 섬성SDI를 병합하고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용, 삼성증권은 삼성선물 지분 100%를 각각 매입했으며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에서 1조원대의 패션사업을 넘겨받고 에스원에 건물관리 사업을 양도함으로써 올해는 대부분의 소속 계열사들이 규제대상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노션과 현대머티리얼 등 규제대상 회사가 10여개에 이르는 현대자동차그룹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규제피해 가기를 도모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은 엔지니어링(설계) 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과 시공위주인 현대엠코를 지난 4월 합쳤다. 현대엠코는 정의선 부회장 25.06%, 정몽구 회장 10%에 내부 거래비중이 61.19%였지만 합병 후 지분율은 16.4%, 내부거래 비중은 37.6%로 낮아졌다.
정몽구 회장의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과 신 사장 자녀들이 지분의 50%를 보유하고 2012년 기준 내부거래 비중이 88%에 달하는 삼우는 KoFC라는 사모펀드를 동원해 자본을 늘리는 방법으로 지분율을 32.6%까지 줄였다.
현대차 그룹의 광고대행사인 이노션도 지난해 상반기 총수일가의 지분이 100%에 달했지만 정몽구 회장의 지분 20%를 재단에 기부형식으로 넘기고 이의 절반을 PEF(사모투자펀드)에 넘겨줬다. 40%를 가진 정의선 부회장 또한 비슷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결국 정성이 고문이 가진 지분 40%는 지분이 희석되는 효과를 가져와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면서 그룹 승계를 위한 4000억여 원의 총알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SK그룹도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을 낮춰 규제를 피했다. SK텔레시스는 지분율을 40.8%에서 18.8%로, SK디앤디는 38.8%인 지분율에는 변동이 없었지만 내부거래 비중을 24.2%에서 6.9%로 낮췄다. 두산그룹도 지난해 7월 지주회사인 (주)두산과 두산산업차량과 엔셰이퍼를 합병했다.
이러한 규제 피하가기는 비단 삼성이나 현대차 그룹 등 대규모 재벌에 그치지 않고 중소규모 재벌들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 명예회장은 지난해 12월10일 보유 중이던 현대그린푸드 주식 일부를 매각, 지분율을 2.59%에서 1.97%로 낮춤으로써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교선 부회장 등 3부자의 지분율 합계를 30.5%에서 29.92%로 줄여 빠져 나갔다.
대성산업 김영대 회장의 친족 회사인 서울도시산업, 태영그룹 윤석민 부회장의 태영매니지먼트 등도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규제를 피했다. 태광그룹은 이호진 전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티시스, 동림관광개발, 티알엠 3사를 합병했다. 티시스는 내부거래 비율이 85%에 달했다.
또 다른 편법도 동원되고 있다. 오너 일가가 보유하는 회사에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살을 찌운 다음 비싼 가격에 지분을 계열사에 떠 넘겨 규제를 피하고 사주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방법이다.
동국제강은 계열사인 디케이유엔씨는 동국제강을 상대로 제3자 배정방식 증자를 통해 최대주주인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사장의 지분을 각각 8.8%, 8.5%로 낮춘 다음 이들 지분을 시세보다 30%로 높은 가격에 전량 동국제강에 매각했다.
영풍그룹도 지난 2009년 설립되어 전체 매출의 60% 가량이 관계사에서 발생하는 엑스메텍의 지분 34%를 사주인 장형진 회장의 세 자녀가 지주회사격인 영풍에 27억 원을 받고 넘기면서 규제도 피하고 돈도 벌었다.
세아홀딩스 이태성 상무는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25.23% 전부를 세아홀딩스에, 이수영 OCI그룹 일가는 쿼츠테그 지분율을 20.79%에서 15.44%로 낮췄다.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또한 내부거래 비중이 높고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영CNI주식을 25억500만원에 부영주택에, 신록개발 지분은 계열사인 동광주택에 22억6900만원에 넘겼다.
경제개혁연대의 조사결과 지난 2월 2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공정거래법에 따라 내부거래금액 200억원 이상, 총수일가 지분율 30%(비상장사는 20%) 초과 기준을 충족하는 대상회사는 전체 기업가운데 120개 기업 미만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37개 그룹 중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계열사는 105개로 2012년 117개보다 10%가량, 내부거래 금액은 161조6000억원에서 158억4000억원으로 3조원 이상 줄었다. 그러나 매출에서 차지하는 내부거래금액 비중은 12.6%로 변화가 없었다.
특히 지난 3일 재벌닷컴이 공기업을 제외한 10대 재벌의 내부거래를 분석한 결과 154조2022억원으로 나타나 내부거래 금액 대부분을 10대 그룹이 차지했다. 1년 전인 2012년의 151조2961억원에 비해 1.92%(2조9061억원)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민주화 요구와 일감몰아주기 규제움직임이 가시화 되었던 지난 2012년 10대 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은 14.08%였으나 2013년에는 다시 14.36%로 상승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이 발효되었음에도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규제의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법안의 정책적 실효성을 저해하는 내부거래 비율 30% 공제 및 주식보유비율 3% 공제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