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세 예금 폐지·파생상품 거래세 부과 수면 위로
"고소득층 탈세 행위로 악용"…세제 지원 취지 벗어나
금융 업계, 시장 침체 우려·세수 효과 미미하다고 주장
새 정부 출범 후 금융상품의 세금 문제가 주요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정부는 세수 확대를 위해 비과세 상품의 세제 혜택을 줄이고 파생상품 등 자본시장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업계의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8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금융상품 과세 체계 선진화 방안'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고 향후 바람직한 조세정책의 방향에 대해 토론을 나눴다.
비과세 상품은 저소득층 등 정부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나 불필요하게 많은 세제 혜택이 남용되고 고소득층의 탈세 수단으로 이용되며 문제점으로 지목돼 왔다.
파생상품의 경우 정부가 초기 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부여하지만 상당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업계의 반발에 부딪치거나 금융시장 위축을 우려해 세금을 부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발표를 맡은 홍범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기획본부장은 비과세 상품의 세제 혜택을 단계적으로 줄여가는 동시에 파생상품 등 자본시장 금융거래의 과세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본부장 연구 결과 올해 저축 지원 국세 감면의 규모는 1조8000억원, 전체의 약 5.3% 수준이다. 2008~2013년 사이 농협 조합 예탁금은 62조6000억원이 증가했지만, 전체 비과세 예탁금은 13조8000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반면 세금우대 종합저축의 잔고는 60조5000억원이 줄었다.
이는 2009년 조합원 예탁금의 비과세 한도가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확대된 반면 세금우대 종합저축의 비과세 한도는 20세 이상의 경우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노인이나 장애인은 6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축소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홍 본부장은 "비과세 감면 금융상품이 전체 저축 규모를 증가시켰다기보다 일반예금의 자금 이동이 일어난 게 아닌가 한다. 설문 결과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렸다는 답이 39.8%로 나타나 어느 정도 저축 효과가 있었으나 이는 특정 대상을 조사한 것이라 일반화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를 들어 재벌 총수라도 현행 1억원의 비과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과세 감면 혜택은 노인층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데 상당히 여유 있는 분이 많다"며 "일거에 정리할 수 없다면 동일하게 일몰 연장 후 도래했을 때 큰 틀에서 전면 개편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고 제안했다.
홍 본부장은 "2004년 정부에서 거래세를 과세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가 폐기된 바 있다. 거래세 논의는 10년 전으로 돌아간 상황이다"고 비판했다.
파생상품의 경우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거래세를 부과하지 않되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법안 개정이 논의중인데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것.
2008년 금융 위기 후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11개 국가는 금융거래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2016년부터 파생상품 과세를 목표로 하고 있다.
홍 본부장은 "흔히 대만이 파생상품 거래세를 부과하면서 거래가 외부로 유출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1996년 대만에서 주가지수 선물시장이 개설된 후 싱가포르로부터 투자자가 이동해 2010년 이후 투자자 비중이 역전됐다"고 밝혔다.
그는 "대만은 거래세를 부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성공적인 파생상품 시장의 성장을 이뤘다"고 덧붙였다.
또 "국회에서 파생상품에 양도소득세로 과세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데 실제로 도입 준비에 들어가면 조세 행정적 측면에서 많은 준비들이 필요하다"며 "먼저 거래세를 도입 후 준비 기간을 거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은행계와 자본시장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민성기 전국은행연합회 상무는 "세금우대 종합저축은 저축을 장려해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라며 "세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은 작은 것을 취하기 위해 큰 것을 잃는 게 아니냐. 거꾸로 세제 혜택을 강화해 가계 저축의 증대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원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은 "파생상품 거래세를 부과할 때 세수 효과가 미미한 반면 거래 위축에 의해 시장 기능이 저해되지 않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는 "한국 파생상품 시장은 2011년 세계 1위에서 현재 9위로 떨어졌는데, 세계 투자자들은 거래 비용이 낮은 시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수요가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 본부장은 "굳이 과세한다면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되 현재의 침체된 시장을 감안해 시기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양도소득세를 도입할 경우 실제 차익 거래에 한해 세금을 부과할 지, 현물·선물의 손익을 합산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도입할 지 등 문제가 과제로 남아 있다.
토론에 납세자 대표로 참여한 김갑순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납세자 입장에서 어떤 과세 제도가 가장 이상적인가 하면 공평한 과세이다. 세금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누군가 납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납부해야 하는데 자신은 세금을 가능하면 적게 내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생상품을 예로 들면 세법상 허점을 이용해 조세 회피를 한 것이나 다름없어 근본적으로 정비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을 지키고 수익적 능력을 고려해 공평하게 과세하는 것이 조세 정의를 실현시킨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