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들, 로열티 받던 한국업체에 먼저 손 내밀어
뛰어난 성과 공통점.."내 손으로 만든 기업, 더 키워달라"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굴로"..본사 인수, 위기이자 기회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이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광장 앞 계단에서 ‘빨라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사진=영화 ‘로마의 휴일’ 캡처)
이 정도면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이라던가 ‘웩더독(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하다. 해외 본사에 로열티를 내고 브랜드와 기술을 받아 사업하던 한국 기업이 아예 본사를 인수해버렸다. 꼬리가 몸통을 먹어버린 격이다.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이사(오른쪽)와 다니엘라 파씨(Daniela Fassi) 이탈리아 빨라쪼 대표가 지난 5일(현지시간) ‘빨라쪼 인수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용을 하고 있다.
해태제과도 그런 경우다. 해태제과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먹었다는 134년 역사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빨라쪼 델 프레도(Palazzo Del Freddo)를 인수했다. 4대를 이어온 아이스크림 장인 기업이 브랜드를 빌려주고 기술도 가르쳤던 한국의 해태제과에 오히려 인수된 것이다.
몸통을 먹은 꼬리는 단순히 돈 많은 물주를 만난 꼬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잘난’ 꼬리였다.
본사이긴 하지만 빨라조는 이탈리아 매장은 로마에 있는 본사 매장 한 곳 뿐이다. 해태제과는 이 빨라조 브랜드를 수입해 한국에서 63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빨라조를 운영하는 파씨 가문은 아이스크림에 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하지만, 해태제과에 인수를 먼저 제안했다. 해태제과의 경영 노하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파씨 가문이 빨라조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우려면 해태제과에 회사를 넘기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잘난 꼬리’의 사례는 여럿 있다. 미국 스무디킹의 한국법인이던 스무디스코리아가 지난 2007년 5000만달러(당시 571억원)를 주고 스무디킹 본사를 인수한 것도 비슷한 경우다.
당시에도 스무디킹의 창업자인 스티브 쿠너가 스무디스코리아를 이끌던 김성완 대표에게 본사를 인수해 사업을 중국과 동남아로 넓혀달라고 달라고 먼저 제안했다. 한국법인의 성과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스무디킹코리아의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스무디킹 매장은 전세계 스무디킹 점포 가운데 1위였다. 연평균 60%의 성장세를 이끌던 스무디스코리아는 ‘스무디킹 창립자상(Smoothie King Founder’s Award)’을 받았다. 성과를 따라갈 곳이 없었다. 60대 노인이던 스무디킹의 창업자는 한국의 40대 경영자에게 자신이 만든 회사의 미래를 맡겼다.
4억달러 규모의 국제적인 기업 인수였던 휠라 본사 인수도 훨라코리아의 눈부신 성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당시 그래서 휠라코리아의 윤윤수 회장은 중국, 남미, 유럽, 일본 등 전세계 휠라법인들을 찾아가 “훨라코리아가 휠라 본사를 인수하면 선로열티를 지급하겠다”는 의향서를 받아왔다. 윤 회장은 이걸 들고 외환은행을 찾아가 인수자금의 3분의2를 빌려 휠라를 인수했다. 당시 각국의 휠라법인이 윤 회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면 애초 불가능한 딜이었다.
윤 회장은 “훨라코리아는 전세계 휠라 진출국 가운데 가장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각국 법인들이 훨라코리아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의 루이비통’이라고 불리던 명품브랜드 MCM을 한국에 수입해 판매하던 성주그룹이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창립자가 탈세 혐의로 물러나면서 독일 MCM은 사세가 꺾였지만 한국에서의 MCM 판매는 승승장구했다. 그래서 MCM 독일 본사가 당시 김성주 성주 사장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김 사장은 MCM 지분을 인수 이후 한국 기자들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합니다. 자칫하면 잡아먹히는 거고 잘하면 잡아먹는 거죠.” 용감한 한국의 꼬리들이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세계 무대로 뛰어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