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일보-김앤장 법률사무소 공동기획]
배우자 쌍방이 동등한 귀책사유 있으면 위자료 청구 못해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남편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이다. 못생기기는 했어도 손재주가 남달라 명품을 잘 만들었다. 그 명품들을 제우스에게 뇌물로 주고 아프로디테와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정작 결혼을 하자 아프로디테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장간 일에만 매달리지 않는가.
잔뜩 열을 받은 그녀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 불륜에 빠졌다. 명색이 사랑의 여신인데 바람을 안 피우면 신화가 되지 않는다. 그 현장을 헤파이스토스가 덮친 후 신들을 불러모아 이들의 불륜을 만천하에 고했다. 이 때 아프로디테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중재에 나섰다. 제우스에게 준 결혼 뇌물 상당액을 아레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위자료로 주고 일을 해결하자고.
교향곡은 현악기와 목관악기로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절정에서 심벌즈와 팀파니 등 타악기 주자를 포함한 모든 주자들의 일사불란한 연주를 통해 웅장한 하모니를 이룬다. 이혼과정도 시작은 잔잔하다.
다른 것은 절정에서 최고조의 불협화음이 생겨 온갖 찌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 그 불협화음의 중심에 위자료가 있다. 위자료 문제는 그리스신화로부터 인류 역사와 함께 했다. 남과 여가 결혼을 하는 한, 위자료의 리스크는 항상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위자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
위자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금이다. 민법 제751조는 “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이혼위자료의 법적 근거다.
부당한 대우, 배우자의 부정(不貞), 기타 혼인 파탄이 이혼위자료 청구사유의 대종을 이룬다. 민법 제806조는 또한 약혼해제의 경우 과실 있는 상대방의 위자료지급의무를 정하고 있는데, 이는 재판상 이혼에 준용된다.
위자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금인 만큼, 재산상 손해와는 달리, 입증이 어렵다. 이 점을 감안해서, 법원은 유책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정도, 혼인 파탄의 원인과 책임, 배우자의 연령과 재산상태 등 제반 사정을 헤아려 위자료를 직권 결정한다. 위자료 산정을 위한 일의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닌 탓에 구체적 판례 분석을 통해 그 금액을 가늠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위자료 받지 않기로 한 합의 유효한가
툭하면 부인을 욕하고 때렸다. 하루는 집안일 의논 중 갑자기 남편이 식칼을 들고 부인을 죽인다고 협박도 했다. 참다 못한 부인이 이혼하기로 하면서 위자료는 청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 후 남편이 다시는 폭행하지 않겠다고 싹싹 빌면서 약속하자 재결합했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하는 법. 남편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 폭행하자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은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기로 한 합의는 재결합으로 무효가 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 합의를 무효로 보면서도, 위자료 액수를 정할 때는 합의가 있었음을 이유로 위자료를 3천만 원으로 감액했다.
대법원 입장은 사뭇 달랐다. 이 합의를 무효로 본 것은 똑같았으나, 합의의 동기가 남편의 폭행이었던 점과 재결합 후에도 약속을 어기고 다시 폭행하여 혼인이 파탄에 이른 점을 감안, 위 합의를 위자료 감액사유로 보지 않은 것이다.
혼수 분쟁 등 신혼 파탄 때의 위자료
혼인을 장사로 생각한 A는 B와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했다. A는 부친이 고위공직자였음을 내세워 상견례 자리에서부터 8천만 원 상당 벤츠나 현금 7천만 원 등 예단과 혼수를 요구했다. A는 혼인신고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약속된 벤츠를 못 받자 “친정집을 팔거나 장모 골프채를 팔아서라도 해결하라”고 윽박질렀다. 사실혼 상태였던 B는 결혼 3개월 만에 사실혼부당파기로 인한 위자료지급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의 책임을 인정, 위자료 6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여교사 C는 외과 레지던트 D와 결혼,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D의 음주벽과 부정행위로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 C는 위자료 2억 원, 예물과 예단비 등 결혼비용의 원상회복으로 1억 76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은 혼인신고 후 1년 만에 혼인이 파탄됐음을 감안, D에게 그 책임이 있다며 예단비와 예물 등의 반환을 명했다.
대법원은 이를 일축했다. 유효하게 혼인이 합의되어 신고를 마침으로써 법률상 혼인이 성립되면 부부공동체가 형성된다고 판단했다. 혼인관계 해소는 민법상 이혼절차에 따라야 하며, 함부로 그 실체를 부정한 나머지 혼인불성립에 준하여 법률관계를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D가 혼인파탄의 책임을 져야 하나, 공동생활을 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기간 내에 혼인이 해소된 것이 아님에도, 예물 등을 원상회복하라 함은 잘못이라면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제3자를 상대로 한 위자료청구
F가 지방에 근무하게 되자 부인 G는 동창생 H와 바람을 피웠다. 이를 알게 된 F는 G와 H를 간통으로 고소하는 한편 이혼소송을 제기, 이혼위자료 1천만 원의 화해권고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런 후 F는 상간자 H에게도 위자료 3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 위자료 2천만 원의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F와 G가 일정액을 위자료로 합의(화해)했다 하더라도 H의 손해배상금액이 그와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F와 G가 합의한 위자료액은 H의 F에 대한 위자료 산정시 고려요인으로만 작용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법원은 G와 H의 부정에 따른 위자료지급채무는 공동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채무로서 부진정연대채무로 보았다. 부진정연대채무의 경우 변제 등 채권의 만족을 가져오는 사유 외의 사유는 채무자 개인에게만 효력이 미치므로, 가사 F와 G가 합의했다 하더라도 H에게는 그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
파탄 책임 정도 대등할 때의 위자료
J와 부인 K의 갈등이 시어머니 간섭으로 깊어졌다. 시모는 용돈이 조금만 늦어도 닦달했고, 자식을 친정에 맡길 바에는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고부갈등이 극에 달하자, J는 K에게 1년간 시댁 식구를 만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랬으면서도 J는 K에게 시모 생일과 명절에 같이 시댁에 갈 것을 요구했다. 결국 K가 이혼소송을 제기한다. 그러자 J는 K가 동호인 모임에서 만난 유부남과 어울리는 것을 목격하고 K를 상대로 이혼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한다.
J와 K가 서로를 상대로 한 이혼 및 위자료지급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이혼을 명한다. J에게는 고부갈등을 적절히 중재하거나 아내의 의사를 존중‧배려하지 못한 잘못이, K에게는 고부갈등을 동호인 모임으로 해소하려다 부정행위에 이르게 되어 신뢰를 깬 잘못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하급심은 부부가 서로를 상대로 한 위자료청구는 쌍방 모두의 귀책사유가 인정된다면서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의 입장도 같다. 논거는 이렇다. 첫째, 혼인파탄의 귀책이 양쪽에 있고 그 정도가 대등함에도 위자료 청구를 용인하면 쌍방에게 동액의 위자료 지급을 명하게 되어 결국 재산이 있는 쪽만 집행을 당하는 결과가 생긴다. 둘째, 일방만이 위자료를 청구하면 양쪽에 동일한 책임이 있음에도 그 일방의 위자료 청구를 용인할 수 밖에 없게 되는 불합리가 생긴다.
위자료 이용한 세테크는 위험천만
위자료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금인 만큼 증여세나 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부동산이나 주식 그대로를 위자료로 지급하면 그 시가에서 취득가액을 뺀 금액이 양도차익을 구성, 지급인에게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이들 재산을 양도한 후 그 대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재산분할에 따라 재산(부동산, 주식 포함)이 분할되면 어느 쪽에도 (양도)소득세와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는다. 혼인기간 중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축적한 재산 중에서 자기 몫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적 이혼을 빙자하여 재산분할액과 위자료를 지급한 후 이혼한 배우자와 어영부영 사실혼관계를 유지하면, 국세청이 이혼을 가장한 재산증여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크다.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공동집필 최재혁·박지현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