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결과 미공개…당국 제재도 없어 품질평가로 전락
국내 회계법인들이 '투명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회계업계는 불투명한 베일 속에 숨어있는 모습이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부터 A회계법인에 대해 실시한 감사인 감리를 최근 마무리했다.
여기서 감사인 감리(품질관리 감리)란 회계법인의 감사계약부터 감사보고서 작성까지 일련의 과정이 국제 품질관리 기준에 부합하는 지 여부를 점검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상장법인의 1% 이상을 감사하거나 등록 회계사 수가 30인 이상인 회계법인은 금감원이, 나머지 소형법인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감리를 실시한다.
문제는 이 검사 결과가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지난 2006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됐을 당시 회계법인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에는 국제적으로도 공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개를 하는 것이 추세"라며 "오래전부터 감독당국에선 공개하자고 주장했지만 업계의 반발이 있어왔다"고 말했다.
대형회계법인 출신 인사는 "당연히 회계법인들은 (공개를) 반대한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공시되고, 잘못하면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일부 국회의원들 중 찬성하는 분들이 있어 언젠가는 공개 될 전망이지만 아직은 먼 얘기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회계법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로 외부감사를 맡겨야 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감리결과 드러난 지적사항에 대해 감독당국이 제재를 할 수 없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현행규정에 따르면 감독기관은 감리실시 후 '개선 권고'만을 통보할 수 있을 뿐, 이행점검 등의 사후 조치권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붙어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정부는 지난해 4월 회계법인 품질관리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경우 그 사실을 공개하고, 개선권고 통보 후 1년 이내 이행점검을 실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무회의 통과 후에도 벌써 16개월간 계류되고 있는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개정은 요원한 것으로 전망된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중소회계법인 파트너들의 경우 사실상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규제 강화를 반길 턱이 없지 않느냐"면서 "게다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회계법인에 대한 규제는 기업들에 대한 부담을 늘리는 것으로 인식되다보니 개선 속도가 더뎌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품질관리 감리제도 자체가 미국의 샤베인즈-옥슬리법 도입에 발맞춰 급히 마련된 제도다보니 예고된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이란 시각도 제기된다.
황인태 중앙대 교수는 "당시 여론에 떠밀려 도입하면서 3년 뒤부터 결과를 공개하자는 말이 나왔는데 그 이후 (회계이슈가) 잠잠하니 어물쩍 넘어가는 측면이 있다"면서 "모든 것이 투명사회라는 구호 하에 이뤄지고 있는 일인데, 이제는 공개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우선 대형회계법인들 위주로 감리결과를 공개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중국의 경우 회계법인 규모별로 감사를 맡을 수 있는 기업을 한정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해 각각의 티어(Tier)에 맞는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