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톱 여배우 송혜교의 탈세 논란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사고였다'며 직접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거듭 용서를 구했지만 한번 돌아선 여론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송혜교에 대한 광고 퇴출 서명 운동까지 벌어졌다. 평소 깨끗하고 선한 이미지로 음료, 보석, 화장품 등의 광고모델로 활약한 송혜교. 하지만 제대로 구겨진 이미지로 인해 향후 광고 모델로서의 운명도 불투명하게 됐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송혜교 탈세 논란은 한류배우 장근석에게 옮겨 붙었다. 장근석이 중국에서 벌어들인 소득 20억원 가량을 탈루한 혐의로 국세청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연예계의 탈세 문제가 전면에 부각됐다.
□ 연예계 '탈세 흑역사(黑歷史)' = 사실 연예계의 탈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잊을만하면 한방씩 터져 나오면서 그들의 이미지에 울고 웃었던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국민MC로 불리던 강호동은 지난 2011년 9월, 그 해 5월 신고한 종합소득세 관련 탈세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추징금을 부과 받았다. 강호동은 공식 사과와 함께 세무적인 착오였다고 해명한 뒤 아예 은퇴를 선언해 버렸다.
강호동의 경우 고의성이 없는 단순 착오로 인해 세금이 추징됐던 케이스로 알려졌지만 악화된 여론을 고려해 1년 동안 방송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는 2012년 10월 방송에 복귀했지만 예전만큼의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배우 김아중 역시 2011년 6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당시 국세청은 김아중이 지난 4년 동안 소득액 중 일부를 신고 누락하는 등의 세금 탈루 혐의를 포착했고 김아중은 세무대리인과의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라고 해명하며 사태를 덮었다.
베테랑 가수 인순이도 지난 2011년 9월, 국세청으로부터 "전체 소득액을 실제보다 줄여 신고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며 수억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부과 받았다. 인순이는 "세무 관련 무지에서 발생한 일이다. 의도적인 누락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국민엄마' 김혜자도 세금 문제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지난 2012년 당시 김혜자는 서울 아현동 자녀 집에 거주하며, 자신의 주민등록지는 매각한 주택으로 처리해 논란이 되자 "1세대2주택으로 분류될지 몰랐다. 고의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류스타 배용준은 지난 2011년, 2005년 종합소득세 신고가 논란이 된 가운데 추징금 21억여 원에 대한 취소소송을 진행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개그맨 서세원은 2003년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세금 1억9500만원을 탈루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 배우 고소영 역시 지난 2007년 세금 포탈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았다.1990년대 말을 풍미했던 가수 김건모와 신승훈도 비용 과다계상으로 국세청에 적발, 검찰에 고발까지 당한 바 있다.
□ '연예인 탈세' 무엇이 문제인가 =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이 원천세로 꼬박꼬박 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현실에서 광고 촬영 한 번으로 수 억원씩을 받아 챙기는 유명 연예인이 탈세를 했다는 사실은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연예인들의 탈세는 추징금이 매우 큰데다 각자 자기분야에서 꿈을 이룬 성실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대중들의 느끼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국세청에서 공개하는 고액체납자나 일반인 탈세자 명단과는 파급력 자체가 다른 것이다.
국세청이 최근 발표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자유직 및 서비스업종 중 배우는 5819억3900만원(신고건수 1만4076건), 모델은 702억400만원(6810건), 가수는 2161억5400만원(4114건)의 수입금액이 세무당국에 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와 가수, 모델 등 연예계에서 종사하는 연예인들의 연간 총 소득은 8682억원, 1인당 3500만원 수준. 인기의 '급'이 천차만별인 연예인들이 신고한 소득을 단순 계산한 '평균치'라는 점, 연예계의 탈세가 공공연한 비밀인 것을 감안했을 때 실제 이들의 소득규모는 더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부 인기 연예인의 경우 영화 또는 드라마 출연료, 광고 모델료 등 계약서가 오고가며 비교적 투명하게 노출되는 소득 보다 소위 '밤무대' 출연료, 행사 출연료 등 노출도가 상당히 낮은 현금 소득이 더 많아 연예인들의 정확한 소득을 추산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탈세를 저지른 연예인들은 대부분 "신고를 세무대리인에게 일임했고, 세법에 대해 무지했으므로 고의적 탈세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연예인의 잘못이 아닌 세무대리인의 독자적인 실수로 인한 결과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연예인들 입장에서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연예인들의 주장대로 세법에 대해 무지한 가운데 세무대리인의 판단에 따라 소득을 신고했다 하더라도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법적 무지로 위법행위를 했어도 고의성에 대한 정상참작만 있을 뿐 위법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다수의 세무대리업계 관계자들은 세무대리인이 세무신고 전에 해당 연예인에게 세무상의 리스크를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해명조차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연예인 탈세에 대해 전반적인 개선작업이 이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탈세는 엄밀한 위법행위라는 인식하에 사회적으로 엄격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한기 국장은 "고소득 연예인들의 탈세문제는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일반 근로자들에게 미치는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며 "연예인들의 납세의식 개선과 더불어 과세당국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엄벌에 처하는 등 처벌을 강화해 일반인들의 박탈감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강화보다는 전반적인 구조 개선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강남대 안창남 교수는 "처벌강화는 조세범처벌법에 이미 있으니 특별히 강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연예인의 경우 수입은 단기에 발생하지만 비용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해 세법에서 비용을 인정 안 해주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연예인 탈세는 구조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마련이 필요하다. 어디까지 비용으로 인정해주느냐에 대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