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훼손 불구 지급보험금 부담에 소송 강행
미지급 보험금 총 2179억원…ING생명이 최다
생명보험사들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금융당국과 법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살보험금 지급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2개의 생보사를 제외한 나머지 10개의 생보사들이 고객을 상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더구나 이들은 담합 혐의까지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생보사들이 생명보험협회에서 모임을 갖고 업계 차원의 대응책에 대해 논의했다며 지난 21일 삼성·한화·교보·ING생명 등 4개의 생보사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현재 자살보험금을 지급키로 한 생보사는 현대라이프와 ACE생명이며, 삼성생명을 비롯한 한화·교보·ING·신한·메트라이프·동양·알리안츠·농협·동부생명 등 10개의 생보사는 자살보험금 지급을 꺼리고 있다.
□생보사, 금융당국·법원 압박에도 모르쇠= 현재 금융당국은 보험에 대한 신뢰 제고를 위해 생보업계가 자살보험금을 약관에 따라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현재 자살보험 재해특약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생보사들에 대한 특별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달 6일 이후 생보사들에 자살보험금 청구 내역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서면 및 유선으로 미지급 내역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왔었다.
최수현 금감원장도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보험상품 종류와 특약 등에 따라 논란이 있지만 자살보험금은 소비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지급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밝혔다.
또 최근 법원에서 난 자살보험금 관련 소송도 소비자의 손을 들어 줬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박형준 부장판사)는 흥국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김씨에게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어머니 A씨를 위해 교통사고 등으로 다치거나 숨졌을 때 보장해주는 보험에 가입했는데 해당 보험은 교통재해로 숨지면 일반보험금에 2.5배인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A씨는 2012년 7월 며느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가 교통사고로 골절상 등을 입었고, 치료 6개월여 만인 지난해 1월 병원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김씨는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교통사고로 승용차 내부에서 숨진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자살했기 때문에 교통재해 사망은 물론 일반재해로 인한 사망에도 해당되지 않아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보험사의 답변을 받고 소송을 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당국과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생보사들의 포지션은 변함이 없다. 자살보험금 지급은 사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급 못하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 = 현재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10개의 생보사를 제외한 타 보험사들과 보험업계의 관계자들은 이 같은 자살보험금 사태를 '결국 돈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생보사들이 지급해야 할 보험금에 따른 리스크가 너무 커 소송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생보사는 이에 따른 이미지 훼손과 고객들의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어진 소송 덕에 이자만 약 479억원에 달하는 자살보험금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4월말 기준 생보사들이 지급해야 할 자살 재해 보험금은 2179억원이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미지급된 자살보험금은 총 2179억원으로 이중 대형보험사는 859억원을 차지했다. 외국사의 경우는 907억원으로 대형사보다 많았으며, 중소형사는 413억원이었다.
ING생명의 경우는 미지급 자살보험금 보유 금액이 653억원(47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로 인해 지난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이기홍 ING생명 부사장은 국감을 마칠 때까지 가시 방석 위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563억원(713건)과 223억원(308건)으로 뒤를 이었다.
또 ING생명의 적발 사례와 같은 재해사망특약이 들어간 상품 보유 현황을 들여다보면 총 281만7173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대형보험사는 158만1599건이었고, 중소형사는 58만9572건, 외국사는 64만6002건이었다.
특히 삼성생명은 95만4546건으로 타 보험사에 비해 월등히 많은 보험상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교보생명의 경우는 46만6818건, ING생명은 36만7984건, 흥국생명은 16만9650건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각 보험사별로 제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작성됐기 때문에 실제 미지급 자살보험금의 규모는 더 클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미지급된 자살보험금의 건수와 금액이 상당한 가운데 현대라이프의 118건·69억원과 ACE생명의 7건·7억원은 소송을 진행중인 생보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자살보험금 지급 결정을 한 생보사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다른 보험사들에 비해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적었던 것이다.
현재 소송을 진행하는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고객별로 사유가 같지 않기 때문에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논란을 막기 위해 사전에 법률적으로 검토를 하는 것이니 금액의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또 지급을 결정한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당연히 약관에 써진대로 한 것뿐"이라며 "지급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이미지 훼손을 막기 위해 결정한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울고 싶은 생보사, 자살보험금 고민은?= 하지만 보험사가 자살보험금을 온전히 다 지급한다 해도 이를 둘러싼 논란은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자살보험금 지급을 통해 자살을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게 될 경우 자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은 물론 제2의 자살보험금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죽은 이들에게만 보험금을 주고,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 차후 자살을 할 경우엔 주지 않도록 해야한다"며 "금감원이 이 부분을 확실하게 해줘야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자살보험금 지급의 부분도 금감원이 지급명령이 아닌 지도공문을 내려보내 보험사들에게 책임을 미뤘다"고 덧붙였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맞다"면서 "미지급 보험사 10곳에 대해 검사를 해 관련자들을 엄격 제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는 지난 16일 있었던 금감원 국감 현장도 뜨겁게 달궜다. 국감장에서 이기홍 ING 부사장은 하루 종일 여러 의원들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느라 혼쭐이 났다.
이 부사장은 이날 자살보험금과 관련해 받았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법원의 정확한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 했다.
여타 생보사들도 입을 맞춘 듯 이 같은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소송에서 1심 판결이 나오는데 어림잡아 6개월은 걸리고, 중대한 사안이라 1심에서 끝나지도 않을 것 같다"면서 "1년 이상 장기적으로 두고 봐야 뭔가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푸념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