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밑 공포'에.. 정부는 뒷짐, 서울시는 발동동

서울시내 73% 20년된 하수관..하루 2건 도로 함몰 발생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다가구주택이 30㎝가량 침하돼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또 이 주택과 같은날(2004년 2월10일) 준공된 바로 옆 건물 역시 과도하게 기울어져 서울시가 건축 안전진단 업체와 긴급 안전점검에 나섰다. 이들 건물은 지하철 9호선 공사구간과 50m가량 떨어진 이면도로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굴착으로 인한 동공(땅속 빈공간) 발생 등 지하철 공사의 영향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거주하기엔 안전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싱크홀(땅꺼짐)에 대한 우려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싱크홀 주요 원인인 하수도 예산…정부 지원 서울시만 ‘0원’

싱크홀 문제로 시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서울시는 부족한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 정부 지원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상황을 좀더 지켜보겠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서울시는 잠실동 다가구주택 침하를 확인한 같은날 내년도 예산안 25조5526억원을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특히 안전 예산은 지난해보다 22% 증액된 1조1800억원을 배정했다. 이 중 도로 함몰 등 싱크홀 대책 관련 예산은 △노후 하수관로 조사 및 보수보강 1345억원 △도로시설물 안전 관리 및 유지보수 4110억원 △건설공사장 안전관리대책 추진 195억원 등이다.

문제는 서울에서만 하루 2건 꼴(연평균 681건)로 발생하고 있는 도로 함몰에 대비할 수 있는 예산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도로 함몰 발생 원인의 무려 85%를 차지하는 노후 하수관을 교체하는 비용은 매년 1000억원이 더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금은 한푼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지역 하수관로는 지난해 말 기준 총 연장 1만392㎞로, 이 중 당장 교체해야 하는 20년 이상된 노후 하수관이 73.3%(7620.8㎞)에 달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매년 2200억~2500억원이 필요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투입 자금은 절반 수준인 1300억원 선에 그치고 있다.

서울시 물재생계획과 관계자는 “하수관은 오·폐수를 배출하는 특성상 부식과 손상의 위험이 크지만 정부 지원은 못받고 있다”며 “관로 파손으로 유출된 하수로 인해 주변 토사가 소실되면 동공이 생길 수 있고 도로 함몰로 이어지면 인명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공론화 필요하다”는 정부… 美·日은 국가가 적극 지원

현재 정부는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시를 뺀 나머지 16곳에 약 2조원의 하수도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유독 서울시에만 예산 배정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높은 재정 자립도와 하수도 시설 보급률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또 싱크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지만 공론화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정 자립도가 가장 높고 하수처리장 시설도 완비된 서울시는 훨씬 사정이 열악한 지방에 비해 예산 지원 우선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며 “서울의 노후 하수관 교체 비용 지원은 국회 등에서 싱크홀 문제가 좀더 공론화되고 필요성이 인정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도시 노후화로 인해 도로 함몰 등 싱크홀 문제를 오래 전부터 고심해온 일본과 미국 등에서는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해 평균 1000여건의 도로 함몰이 발생하는 일본 도쿄의 경우 2011년 이후 매년 하수도 사업비용의 약 10%인 488억엔(4641억원)가량을 국가에서 지원받고 있다. 또 2010년 이후 직경 10m 이상 대규모 싱크홀만 521건 발생한 미국 플로리다는 연방정부 지질조사국이 관련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조성일 서울시 도시안전실장은 “하수도 요금 인상 등 서민 경제에 부담을 주는 세금 인상 없이 관련 예산을 확보하려면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우리 국민 1000만명이 살고 있는 서울의 위험을 단순히 지자체만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