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문화는 각인된 영혼의 작품
영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더욱 깊고 깊은 심연(深淵)과 같다.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알 수 없다. 인간으로서 이런 것을 모두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사를 살다 간 많은 성인들, 종교인들, 그리고 영적인 천재들도 겨우 한 부분만을 알고 갔을 뿐.
영혼은 사람마다 고유한 습성을 발현시키는 DNA를 가지고 있다. 생전에 쌓아온 업과, 말과 마음으로 지어온 결과에 따라 몇 번의 생을 거듭하면서 그 특성이 그대로 이어져 영혼에 각인된다고 할 수 있다.
국립극단 예술 감독인 L씨의 이야기다. 지난 1991년, 일본으로 출국할 예정인 L씨를 우연히 만났다. 나는 그와 얘기를 하던 중 그의 얼굴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어 말했다. "L씨. 이번에 일본에 가면 틀림없이 전생을 알게 되는 사건이 있을 겁니다."
그는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듣는 듯 했다. 그가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자 현지 신문사 편집국장이 친절하게 그를 안내했다. 편집국장의 안내로 그가 간 곳은 일본의 유명 시인이자 화가였던 '유메노 교사쿠'의 추모회였다.
1948년에 사망한 유메노 교사쿠는 우리의 천재 시인 이상(李箱)에 비견되는 유명한 예술가로, 유메노 교사쿠에 대한 안내 팸플릿을 읽던 L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팜플렛에 실린 '시간'이라는 시를 읽고 있었는데. <시간>은 L씨의 첫 데뷔작 작품의 제목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만이 아니라 주제와 문장까지도 비슷하다는 것에 L씨는 더더욱 놀랐고, 그때 문득 내가 흘린 말이 생각나더라고. 사회자가 들려주는 작가의 일화는 그를 또 한 번 놀라게 만들었다.
유메노 교사쿠는 몸에 열이 많아 글을 쓸 때 나체로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는 현재 L씨의 버릇이기도 했다. 철저한 평화주의자로 한국문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던 유메노 교사쿠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인 L씨. 두 사람의 공통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영혼과 문화를 이야기할 때 둘을 나누어 말하지 않는다. 이 둘은 생을 반복하면서 오래도록 언제나 함께 해 왔다. 흔히 그림을 평할 때 작가의 혼이 깃든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처럼 각인된 영혼들이 모여 만든 것이 문화다.
한 나라의 문화를 만들고, 한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다만 시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었으니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다.
영혼의 DNA는 우리의 행적을 아주 잘 기록해 주고 있는 인생기록부다. 전생을 통해 살아온 행적이 영혼에 새겨져 그 사람의 삶에 습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 습성이 문화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