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과도한 텔레마케팅이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산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씨는 오늘만 5번째 보험사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가입해 있던 자동차보험의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보험사들은 김씨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김씨는 지금까지 기존의 보험 서비스에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굳이 다른 보험사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 보험사들은 도무지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 정중하게 거절해도 막무가내로 걸려 오는 보험사의 전화.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 만기를 앞둔 고객들을 서로 빼앗기 위해 벌이는 경쟁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 과잉 마케팅에 막상 고객들이 불편을 겪는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직장인들 입장에서는 업무 시간에도 계속해서 걸려 오는 전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 텔레마케팅 영업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다.
이러한 사실을 당국에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협회에서는 개인정보 유출방지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일부 과잉 마케팅을 막고 있다. '비대면 보험영업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금융 상품 이용자가 텔레마케팅을 거부할 수 있는 두낫콜(do not call) 제도를 운영 중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고객이 상담을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걸려 오는 전화에 대한 불평의 민원이 종종 들어온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두낫콜과 별개로 비대면 보험영업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일 1회 전화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전화 통화 시 고객이 거절했을 경우 다시 전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규제가 준수되고 있지 않는 것은 문제"라면서 "TM 채널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반면 당국은 보험사가 고객에게 만기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리는 부분에 있어서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만기가 종료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무보험 차량을 운행하다가 처벌을 받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보험사들은 '1일 1회 콜' 규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단순한 '실수'라며 "시스템 오류로 인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한다.
자동차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위는 해당 건마다 다르겠지만 과태료부터 책임자 징계까지 강제적으로 규정을 운영하고 있어 이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차주라면 누구나 보험사의 잠재 고객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동차보험을 통해 다른 상품을 연계해 판매할 수도 있어 더더욱 놓치기가 아까운 고객인 셈이다.
자동차보험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행·관리하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의 피해를 담보별로 보상한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르면 차량 소유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책임보험'과 운전자(차주)나 보험사가 가입, 인수 여부를 서로의 뜻에 따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종합보험'이 있다.
자동차책임보험은 차량 소유자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강제보험이다.
따라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려는 텔레마케팅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만기가 다가오는 고객들을 사로잡아 자사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갈아타기를 강요하는 과잉 마케팅은 소비자 불편을 외면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당국이 정한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실적에만 연연하는 텔레마케팅 사례가 많은 실정이다.
한 보험설계사는 "어차피 고객들이 자동차보험에 가입해야만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먼저 전화를 해 잡는 사람이 임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