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신고를 4월이나 5월로 옮기자고 하는 것에는 공인회계사들이 자신들의 업역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 숨어있다"
몸살 기운이 역력해 보인, 본인 또한 그렇게 밝힌 정구정 한국세무사회장이 좋지 않은 안색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4일 역삼지역세무사회 신년인사회에 굳이(?) 참석해 꺼낸 말이다.
대체 법인세 신고기한에 무슨 문제가 있길래 세무사회장이 지역세무사회 행사에 찾아와 이런 말을 하고 나선 것일까.
현재 법인세 신고는 사업연도 종료일이 속한 말일부터 3개월 이내에 하도록 되어있다. 법인세 신고를 위해서는 재무제표가 필요한데 규모가 큰 외감대상법인의 경우 이것을 위해 결산을 하고 감사를 받아야 한다. 대체로 기업들은 회계법인과 정보를 주고받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2월말이나 3월초에 재무제표가 확정된다.
하지만 감사인과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시간을 더 소비, 3월 중순이 되어서야 법인세 신고 업무에 들어갈 수 있다.
빵빵한 세무회계인력을 거느린 대기업들도 벅차다며 불만이 많은데, 세무회계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의 경우에는 오죽하겠는가.
이에 지난해 12월 정기국회 당시 조세소위에서는 경리실무자가 부족한 중소기업에 한해 법인세 신고기한을 3개월에서 4개월로 연장하자는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의 법안이 다뤄진 바 있다.
현재 12월 결산법인이 90%이상이기 때문에 결산, 재무제표 작성, 감사가 법인세 신고기한과 겹쳐 큰 업무 과부하를 겪고있는 기업들의 어려움을 줄여주기 위해 법인세 신고기한을 한달 연장해주자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김 의원의 이러한 법안은 조세소위 논의과정에서 좌절됐고, 당시 조세소위 소속 모 의원은 "세무사회의 반대가 심하다"라는 이유로 법안이 철회된 이유를 설명했다.
법인세 신고기한이 연장된다면 외부감사를 주업무로 하는 회계법인들이 시간적 여유를 획득할 것이고, 회계법인들이 세무법인들의 주 고객층인 비외감법인 중소기업들에게도 손을 뻗치게 될 것이라는게 세무사회를 포함한 세무업계 일각의 반대논리였다.
이에 이날 정구정 세무사회장은 "업역을 넓히려는 공인회계사들의 전략이 숨어있다"며 법인세 신고기한을 연장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옆 가게(회계사)에 유리한 것이니 영업일수연장(세법개정)이 불가하다는 취지의 이날 발언은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프다' '못 먹어도 고'라는 인식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들렸다.
더욱 거북한 것은 세무사회장이 밥그릇 지키기에 연연해 세무사들의 주고객이며 납세자인 중소기업의 애로사항 따위는 안중에도 없음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어쨌든 정 회장의 노력으로(?) 법인세신고기한 연장이 좌절됐는데, 이것이 과연 세무사에게는 득이 될런지 한번 따져보자.
첫째, 정밀성 문제다. 회계사는 물론 세무사에게도 3월은 바쁜 시기이다. 과거의 언론보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무사들 역시 부실 세무대리, 부실 세무조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좀 더 충분한 기간을 갖고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둘째, 인력난 문제다. 사무소 직원 인력난으로 고생하는 세무사들이 많은 상황에서 지난 20여년간 동결된(?) 수임료로 3월말까지 오류가 있어서는 안되는 결산과 세무조정, 법인세 신고를 완벽하게 무리없이 해낼 수 있을까.
셋째, 영업일수 문제다. 3월까지 개정세법에 따라 바뀌는 세무조정업무가 만만치 않은데다 4월에는 중소법인 지방소득세 신고업무와 부가세 예정신고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5월에는 종소세확정신고업무, 6월에는 성실신고확인을 해야하는 중소기업이 25만개로 작년보다 280%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하반기로 들어가면 7월 부가세확정신고업무 외에는 과부하가 걸릴만한 일거리가 별로 없어 개점휴업(?)상태인 세무사가 많다. 세무사무소의 상근인력 활용도가 연중 들쭉날쭉한 이유다.
상반기 업무만 놓고보면 법인세 신고를 3월에 끊어주는 것이 세무사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곰곰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상반기 중에도 일거리가 많을 때는 업무가 폭주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한가한 날짜들이 꽤 많다. 특히 3월 법인세신고가 5월 소득세확정신고에 비해 훨씬 업무량이 많다.
결국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세무사 입장에서도 영업일수연장은 필요한 것이다. 가능하다면 법인세신고기한을 4월이 아니라 6월말로 연장(법인세는 3월 예정납부)하면 더 좋을 것이다.
더구나 외부감사대상법인을 주고객으로 하는 회계사와 비외감대상법인을 주고객으로 하는 세무사의 법인세 고객영역은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다.
설령, 영업영역이 겹친다한들 세무전문가를 자처하는 세무사의 법인세 영업일수가 늘어나면 세무사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법인세 신고기한 연장 문제를 광폭의 시각으로 득실을 따져 접근해야 보다 현명한 답이 나올 수 있다. 단순히 경쟁관계에 있는 자격사들의 업역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다는 논리로 이 문제의 접근법을 찾는 것은 굉장히 편협한 시각이다.
고객의 대부분이 중소기업들인 세무사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고객들의 니즈(Needs)를 적극적으로 듣고 풀기 위해 노력해도 모자를 판에 남의 집 잘되는 것 보기 싫어 그 니즈를 발로 걷어차야 한다고 펌프질 하는 세무사회장은 도대체 어느 나라 세무사라는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