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장례 사흘째…이희호·이회창·김현철 등 초당적 조문행렬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 김종필(89) 전 국무총리의 훈수정치가 화제다.
숙환으로 별세한 부인 고(故) 박영옥(86) 여사의 장례식장에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조문행렬에 나서면서 그동안의 정치인생을 정리하듯 자신의 정치역정과 정치관을 후배에게 조언하고 있는 것.
특히 평소 금슬이 좋았던 아내의 죽음에 장례기간 내내 눈물을 보이며 아내를 그리워하는 모습에 주변을 숙연하게 하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장례 사흘째인 23일에도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오전 10시 무렵 나와 조문객을 맞았다.
이날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1997년 대선 때 'DJP 연합'으로 패했던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등이 조문에 나섰다.
이 여사는 이날 정오께 새정치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윤철구 김대중평화재단 사무총장의 부축을 받으며 직접 조문했다.
이 여사는 "(고인이 된) 여사님이 덕이 좋았다. 몇 번 만나 뵙고 선거 때 같이 다니기도 했다"고 고인을 회고했고, 김 전 총리는 "건강하셔야 한다. 가신 어른 분까지 더 오래 사셔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와 관계가 서먹한 이 전 총재도 조문해 10여분 간 빈소에 머물며 위로했다. 이 전 총재는 "뭐라 드릴 말씀이…"라고 위로하며 "(직접) 뵈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건강하시다. 건강에 유념하시고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에 김 전 총리가 "국내에 계셨나. 운동은 뭐 하세요"라고 근황을 묻자, 이 전 총재는 "집에서 책이나 보고 칩거하고 있었다. 매일 헬스장에 가서 요즘 열심히 몸의 균형을 다시 찾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전 총재는 조문 후 기자들에게 'JP와의 서먹했던 관계'에 대해 "그건 다 알려져 있는 것 아닙니까. 정치에서 만나 뵙고 여러 가지 있었지만 정치라는 것은 지나면 다 남가일몽(南柯一夢.남쪽 나뭇가지에 걸린 꿈이란 말로 인생의 덧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말했다.
폐렴으로 입, 퇴원을 반복해 온 김영삼(YS) 전 대통령 대신 조문 온 차남 현철씨는 "아버님께서 많이 좋아지셨다. 말씀도 곧잘 하시고 식사가 조금 불편하다"고 근황을 전한 뒤 "찾아뵙지 못하신다고 전해드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특히 김 전 총리는 이날 조문객과 대화 도중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평소 지론에 대해 "내가 왜 정치는 허업이라 했는지 해석을 잘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정치는 키워서 가꿔 열매가 있으면 국민이 나눠갖지 자기한테 오는 게 없으니 정치인 자신에겐 텅텅 빈 허업이고 죽을 땐 '남는 게 있어야지'라고 한탄하면서 죽는 거다. 근데 국민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라는 말이야.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겠다고 그러면 교도소밖에 갈 길이 없다"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하면 뭐하나. 다 거품 같은 거지"라며 "천생 소신대로 살고, 자기 기준에서 못했다고 보이는 사람 죽는 거 확인하고, 거기서 또 자기 살 길을 세워서, 그렇게 편안하게 살다 가는 게 (승자)"라며 거듭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날 빈소에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정홍원, 이수성 전 총리,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조일현 전 의원, 벳쇼 고로 주한일본대사 등이 조문했다.
◈ 사촌언니 조문 온 朴 대통령, JP도 직접 배웅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부인 박영옥씨의 빈소가 마련된 현대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박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형인 박상희씨의 장녀로, 박 대통령에게는 사촌언니이다. 척추협착증과 요도암으로 투병했으며 지난 21일 밤 별세했다.
박 대통령은 김 전 총리에게 "가시는 길 끝까지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신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라고 전했고, 김 전 총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보였다.
특히 이날 조문에서 박 대통령은 김 전 총리와 10여분 간 독대하며 이야기를 나눴고 김 전 총리는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박 대통령을 배웅했다. 박 대통령의 빈소 조문은 지난 2013년 남덕우 전 총리 빈소 방문 후 처음이다.
비공식 일정으로 진행된 이날 박 대통령의 조문에는 조윤선 정무수석과 민경욱 대변인 등이 수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