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에는 '행정고시 출신이면 숨만 쉬고 있어도 고위공무원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그만큼 극소수에 불과한 행시출신에 대한 승진 우대 현상이 극심하다는 얘기다. 일시적인 현상일지 모르나, 현재 관세청 고위공무원 15명(청장 제외) 중 1명(서정일 국경관리연수원장, 7급 공채)을 제외한 14명이 행시 출신이다.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0일 천홍욱 전 관세청 차장의 명예퇴직으로 인해 비어있던 고공단 한자리가 채워졌다. 성태곤 전 평택직할세관장이 고위공무원으로 승진, 관세청 통관지원국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당초 고공단 승진인사가 있기 전 관세청에는 유독 고시출신이 많은 고공단 인적구도를 감안해 비고시출신에 대한 배려인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 돌았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행시 37회 출신 성태곤 국장이 승진 이동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 관세청 고위공무원, '93.3%'가 행시 출신 = 20일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관세청 현원은 4476명(정원 : 4588명)이며, 이중 행시출신은 76명(1.7%, 청장 포함)이다.
전체인원 대비 행시출신 비중 살펴보면 행정사무관은 현원 257명 중 28명이 행시 출신으로 현원의 10.8%를 차지하고 있다. 서기관은 89명 중 28명이 행시 출신으로 31.4%, 부이사관은 9명 중 5명이 행시 출신으로 55.5%를 차지한다.
고위공무원은 15명 중 14명이 행시출신으로 무려 93.3%를 차지하고 있다.
행시 기수는 정재열 부산세관장이 26회로 가장 높다. 27회에는 김낙회 관세청장을 포함해 3명이 포진해있다. 28회는 없고 29회는 이돈현 차장 1명이다.
30회는 정일석 기획조정관과 박철구 인천공항세관장 2명이 있지만 31회부터 33회까지는 단 1명도 없다. 이후 34회 1명, 36회 2명, 37회 4명, 38회 1명 등, 여기까지가 현재 행시 출신 관세청 고위공무원이다.
급이 높아질수록 당연히 행시 출신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세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행시 출신은 행정사무관(5급)으로 공직을 시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비고시 출신들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관세청은 행시 편중 인사가 유독 심하다는 지적이 지난 십 수년 동안 관세청 내부는 물론 밖에서까지 일고 있다. 전체 관세청 인원의 1.7%에 해당하는 행시 출신이 승진에서 압도적인 혜택을 받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비고시 출신들의 사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부러운 국세청…"인사구조 개혁 노력이라도 했으면" = 일각에선 극심한 인사적체와 피라미드를 넘어 '압정형' 인사구조를 갖고 있는 관세청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관세청 인사구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국세청의 경우 최근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지난해 8월 취임하면서 일선에서도 관리자가 나올 수 있다는 이른바 '희망사다리' 구축을 공언했고 이후 진행된 인사들은 새로움을 넘어 '파격'이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26년만의 비고시 출신 국세청 차장인 김봉래 차장 선임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파격 인사가 단행됐다.
김재웅 중부국세청장은 세무대(1기) 출신이고 김형중 대전국세청장은 9급 공채 출신이다. 신수원 광주지방국세청장과 남동국 대구국세청장은 7급 공채, 원정희 부산국세청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김연근 서울국세청장을 제외한 지방국세청장 자리가 모두 비고시 출신으로 채워진 것이다.
국세청 고위공무원 정원(TO)는 38명으로 전체 1만9857명 가운데 0.19%에 불과하다. 관세청은 정원 4588명 중 고위공무원이 15명으로 0.32% 수준이다. 고위공무원까지 오르기에는 국세청보다 관세청이 미약하게나마 여력이 있는 셈이다.
국세청의 최근 행보가 그저 부러울 수밖에 없는 관세청 비고시 출신들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9급으로 들어와 7급으로 퇴직하는 이들도 수두룩한 현실에서 고위공무원은 커녕 관리직마저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비관적인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일선 세관 직원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승진이 힘들다. 조직의 특성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이정도면 조직의 특성을 바꾸려는 노력이라도 해봐야 하는데 아무런 노력도 보이지 않아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국세청처럼 1급지를 몇 군데 가지고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현재 1급은 차장 뿐 인데 서울본부세관이나 부산본부세관 등이 1급지가 된다면 밑에 국장자리까지 고위공무원이 된다.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외부 출신 청장이 연거푸 오다보니 이 같은 면에 취약한 것 같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