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증여세가 무서워"...고령 재산가 돈 금고 속으로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고율의 상속증여세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령의 거액 재산가들이 높은 상속증여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돈을 꼭 쥐고 있어 5만원권이 금고속으로 사라지는 등 돈이 돌지 않아 경제활성화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상속시기가 갈수록 지연되고 있어 2세 3세들의 역동적인 경제활동이 제한받고 있다고 보고 상속증여세제를 조기에 손질해 잠겨 있는 돈을 경제영역으로 끌어 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행된 5만원권은 모두 52조원으로 발행화폐 액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육박한다. 그러나 회수율은 갈수록 떨어져 지난해에는 10장중 7장이 돌아 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발행규모와 회수율만으로 추산해 보면 40조원 어치가 어딘가에 잠겨 있는 것이다.
5만원권 통화비중 및 회수율 추이
5만원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금융계는 저물가 저금리로 현금보유성향이 커졌다고 분석한 반면 기업계는 투자환경이 불안해 현금보유규모를 늘리고 있다는 설문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재계와 조세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가혹한 상속·증여세 때문에 재벌과 재산가들이 재산을 현금화해 따로 저장해 놓은 규모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거액 재산가의 컨설팅을 맡은 세무사는 "세계최고 수준의 상속증여세 세율과 2010년부터 강화된 완전포괄주의로 상속세 부담이 커져 재산가들은 재산을 현금형태로 바꿔놓고 있다"며 "사전증여 대상이 10년으로 늘어난 이후 중산층에도 상속세 부담이 늘어나 중산층도 합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증여세율...포괄주의 채택으로 기준도 애매모호
한 민간금융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세계최고 수준이어서 고액권 화폐가 실종되거나 조세회피 등 불법행위를 유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의 최고세율은 50%로 미국의 40%, 영국의 40% 보다 높다. 독일의 경우는 최고세율이 우리와 같은 50%이지만 최고세율 적용구간은 400억원으로 우리나라의 30억원보다 10배 이상 크다. 일본도 최고세율은 우리보다 높은 55%이지만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구간이 40억원으로 우리보다 크다.
각국 상속증여세율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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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주요국 |
| 상속증여세율 |
10~50% (최고세율적용구간 : 30억원) |
미국 18~40% (최고세율 적용구간 25억원) 일본 10~55% (최고세율 적용구간 40억원) 영국 40% 단일세율 독일 7~50% (최고세율 적용구간 400억원) |
재계 일각에서는 재산가들의 묶인 돈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상속증여세의 세율 인하 외에도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강화된 완전포괄주의를 이전처럼 나열주의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에는 상속증여의 대상이 되는 자산이 나열돼있어 과세당국도 납세자도 큰 혼동이 없었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전환사채 증여가 사회적 이슈가된 이후부터 상속증여대상을 '경제적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형, 무형의 재산을 직접, 간접적으로 이전한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했다.
과세여부를 '경제적인 실질에 따라 판단'하도록 돼있어 소액의 자산이나 가치가 뚜렷하지 않은 재산, 이전 여부나 이전시기가 불분명한 재산까지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때문에 부과대상자가 늘어나고 상속세 계산과 신고절차도 어렵고 복잡해져 신고후 과세당국과의 마찰이나 불복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또 자식이 부모가 하던 사업을 이어 받아 사업을 계속하는 경우 상속세를 줄여주는 가업승계 공제도 중소기업에만 적용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공제범위를 넓혀 중견기업이나 대기업도 적용받도록 해야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기술개발이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가업승계 더뎌 기업투자 활동도 부진해 경제활력 떨어져
우리나라의 현행 상속증여세제는 부모가 사망해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할때 사망하기 전 10년 내에 자식에게 준 재산이 있으면 그 재산가액을 상속세 과표에 합산하게 돼있다. 그만큼 과표가 커져 고율의 세금을 적용받아야 한다.
또 사망전에 재산을 줄 때 받은 적은 액수의 공제율이 적용돼 사망후에 받을 수 있는 공제금액이 큰 폭으로 줄어든다. 결국 올라간 세율과 줄어든 공제액 때문에 세금을 훨씬 많이 내야한다는 것이다.
재산이 있는 고령자들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주지못해 부동산 등을 현금화하거나 각종 탈법과 편법을 저지르는 이유라고 업계에서는 얘기한다.
중견기업의 재무담당 임원은 "사실상 경제활동이 거의 멈춘 고령의 창업자들이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자식에게 재산을 마음놓고 줄 수 없다"며 "이때문에 기업에 대한 투자가 더디게 진행돼 회사가 위축되는 주요인이 된다"고 부작용에 대해 얘기했다.
재계의 세무금융 전문가는 "최근 상속증여세제를 폐지하고 있는 나라가 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고령자들의 재산을 시장으로 끌어내 경제발전에 활용하려는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상속세 폐지론을 주장했다.
실제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포르투갈, 멕시코, 스웨덴, 오스트리아, 체코, 인도, 러시아 등 많은 나라가 상속증여세를 폐지했다.
■ 과세대상 구간 10년째 고정...과세대상 중산층으로 확대
사전증여세제와 함께 현재의 과세표준 구간이 비현실적이라 과세대상이 점차 중산층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초 상속증여세는 고액 재산가들의 부의세습에 세금을 물리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세율구간이 지난 10년동안 개정되지 않다보니 이제는 중산층도 보유 부동산가격이 올랐거나 주식가격이 올라 상속세 과세대상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상속세는 1억원, 5억원, 10억원, 30억원 단위로 각각 10%, 20%, 30%, 40%, 50%의 상속세를 내게 돼 있어 상속세 과표가 1억원만 초과해도 20%의 세율이 적용되며, 5억원을 초과하면 30%의 세율이 적용된다.
금융자산을 어느 정도 가진 중산층의 경우 과거에는 상속세 과세 대상에 들지 않았으나 이제는 아파트와 보유주식의 가격이 오르면 상속세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자녀들도 부모사망시 10년 동안 부모와 본인의 자금거래내역을 챙겨야 할 처지가 됐다.
이밖에도 손자녀들에 대한 상속과 임대부동산에 대한 상속 등 최근 경제상황의 변화를 상속증여세제가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특수관계가 없는 당사자들간의 거래에도 상속증여세를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 등이 나오고 있다.
저성장이 장기간 지속되고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최근 상속증여세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