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일명 메르스) 사망자가 2명, 확진자는 30명으로 늘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격리대상자는 지난 2일 800여명에서 3일 현재 1300여명으로 급증했고, 발생률이 제로에 가깝다던 3차 감염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발생 초기 보건복지부는 “메르스는 전염성이 1인당 0.7명으로 높지 않으며 3차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공염불이 됐다. 3차 감염자가 발생하자 복지부는 “이번 3차감염은 의료기관내 감염으로 판단되며, 지역사회로 확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을 바꿔 빈축을 샀다.
감염자 수가 늘면서 수도권 병원을 중심으로 병원을 찾는 외래 환자가 급감했고, 호흡기질환과 무관한 수술의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149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복지부는 3일 메르스 유전자검사에서 5명이 양성으로 추가 확인돼 환자 수가 모두 30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새로 추가된 환자 5명 가운데 1명은 3차감염자다. 이로써 3차 감염자는 총 3명으로 늘었다. 심지어 3차 감염자 중 2명은 보건당국이 초기에 격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환자에서 감염돼 방역망에 구멍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보건당국은 발생 초기 병원과 환자의 검사 요구를 묵살해 문제를 키웠다. 지난달 18일 첫 감염 환자가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입원한 뒤 병원 측은“환자가 메르스 증상이 있으니 유전자검사를 해달라”고 신고했지만 보건당국은 “환자가 체류한 바레인에는 메르스 환자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거부했다. 이튿날 이 병원이 보건 당국에 재차 유전자검사를 요구한 뒤에야 검사가 진행됐다.
초기에 발표한 메르스 감염 의심 기준도 느슨했다. 지난달 15~17일 첫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쓴 3호 환자의 딸이 “나도 메르스에 걸린 것 같으니 병원에서 격리 진료해달라”고 했지만 보건 당국은 “체온이 36.3도라 메르스 감염 의심 환자가 아니다”며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메르스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주원인은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2003년 3월 중국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일명 사스)가 확산됐을 때 당시 고건 국무총리는 범정부 차원의 종합상황실을 구성, 국가적 재난 상황을 막았다. 이런 노력으로 중국과 홍콩에서만 6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한국은 확진 환자가 1명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복지부는 지난달 20일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지 11일 만인 지난달 31일에야 민관합동대책본부를 구성했고,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2일 처음으로 관계 부처 장관회의를 열었다.
또 정부는 메르스에 대한 국가재난 단계를 여전히 ‘주의’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문 장관은 “현재 감염 경로는 의료기관 내에 국한돼 있다”며 “우리가 관리 가능한 상태로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주의단계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벌써 두 명이 사망하고 격리 대상도 750명으로 치솟은 상황에서 보건당국이 여전히 안이하게 대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가 창궐했을 땐 주의보다 한 단계 위인 ‘경계’는 물론 ‘심각’ 상태까지 격상되면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편성됐다.
메르스 발병 병원의 명단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 점도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문 장관은 “병원명 비공개로 인한 고민의 많은 부분은 근거가 없다”며 “메르스는 밀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어떤 환자가 해당 병원에 있었다고 해서 그 병원에 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에서는 이미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입원한 병원의 명단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으로 지목된 A병원 관계자는 “메르스 발병 이후 외래 환자가 눈에 띄게 줄었고, 관련 문의전화도 몇일 째 빗발치고 있다”며 “진료실과 병동을 폐쇄하고 방역 작업을 실시하는 등 철저히 대처하고 있지만 이번 명단 공개로 마치 비위생적인 병원이라는 오해를 받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차라리 명단을 공개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B병원 관계자는 “차라리 메르스 발생 병원의 명단을 공개하면 환자들의 불안이 줄고 다른 병원들이 메르스 관련 오해와 불신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격리 환자를 수용할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전염병 격리지정 병원은 모두 17개, 격리치료를 할 수 있는 음압병상은 105개에 불과하다. 또 이들 대부분이 민간병원으로 전염병환자를 수용했다는 소문이 돌면 다른 환자들이 오지 않는다. 심하면 2주 정도 병원 문을 닫아야 하는데, 이에 대한 피해보상 규정이 없다. 결국 모든 부담을 병원이 떠안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머뭇머뭇하며 초기 방역에 실패한 게 메르스 확산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비판한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차 저지선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했어야 했는데 초기 방역이 무너졌다”며 “지금이라도 신속한 검사 및 격리시스템을 갖추고 예산과 인력을 과감히 투입하는 등 새판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스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MERS-CoV)에 의해 발생한다. 2~14일의 잠복기를 거쳐 38도 이상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 증상이 나타난다. 임상 증상이 비슷한 질환으로는 사스도 변형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며 전파력은 메르스가 더 낮다. 메르스는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고, 전염시 신장기능이 빠르게 저하돼 사스보다 사망률이 5배 가량 높다. 사스가 침방울에 포함된 바이러스로 전파돼 급속도로 여러 국가로 퍼진 것과는 달리 메르스는 사람간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메르스로 중동·유럽 23개국에서 환자 1142명이 발생했고 465명이 숨졌다. 메르스의 치사율은 약 40%로 지난해 이슈가 됐던 에볼라바이러스(50%)와 견줄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