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마침내 해냈다. 국민타자 삼성의 이승엽선수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400호 홈런을 친 것이다. 그것도 불혹의 나이에.
140년 전통의 미국메이저리그에도 400홈런을 기록한 현역선수는 단 4명에 불과하고 일본에는 그런 현역선수가 아예 없다. 그야말로 대기록이다. 거기에 상대투수를 배려하는 인품과 빛나는 겸손, 성실성까지 갖췄다. 이제는 국민타자를 넘어 국보(國寶)타자로 불릴만 하다.
1970년대에는 프로야구는 없었고 고교야구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우리 경제는 야구공 하나가 아까울 정도로 곤궁했다. 파울이나 홈런으로 인해 야구공이 관중석으로 날아가면 이를 잡은 관중이 야구장 안으로 던져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그 공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 빨리 돌려주십시오”라는 반 협박성 반 애원성 코멘트가 방송될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 경제가 넉넉해진 지금에는 관중석으로 날아간 공은 먼저 잡은 사람이 임자다. 야구공이 펜스를 넘는 순간 민법상 무주물(無主物)이 된다는 것이다.
이승엽선수가 400홈런을 쳤음은 곧 400개의 무주물을 생산했음을 뜻한다. 이 400번째 무주물을 어떤 관중이 선점했다. 몇 억원의 가치가 있다는 등 설왕설래가 분분하다. “머니볼”이 된 것이다.
400호 홈런볼을 주워 횡재한 사람에 대한 세법의 태도는 어떠한가. 소득세법은 소유자가 없는 물건의 점유로 소유권을 취득하는 자산의 가치를 “기타소득”의 하나로 본다. 얼핏 관중석으로 날아든 공을 주운 사람에게도 소득세를 물릴 수 있는 것처럼 들린다.
문제는 언제 세금을 매길 수 있는지 여부다. 소득세법 시행령은 무주물의 점유로 인해 생긴 소득은 이를 “지급”받은 날이 속한 연도의 소득으로 본다. 그렇다면 400호 홈런볼을 주운 사람이 무주물 점유에 따른 소득을 지급받은 날은 언제인가. 주운 바로 그 날인가. 아니면 이를 매각하고 대가를 받는 날인가. 소득세법의 입장은 분명하지 않다.
예컨대 순금덩어리를 주운 경우에는 그 가치를 곧바로 알 수 있어 주운 그 날에 소득을 지급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가치가 주운 날이 속한 연도의 소득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400호 홈런볼의 가치도 분명 클 터. 그러나 당장은 이를 계량할 수 없다. 팔아 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주웠다는 사실은 똑같은데, 순금덩어리는 주운 때 과세하고 400호 홈런볼은 팔 때 과세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기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
2006년 6월 5일자 조세일보는 당시 재정경제부가 역사적 의미를 지닌 홈런볼이라 하더라도 과세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순금덩어리처럼, 홈런볼도 주운 당시를 지급시기로 보고 그 당시 가치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길 수 밖에 없으나, 주울 당시 가치는 기껏해야 공값 6천원이니 과세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400호 홈런볼을 팔 때는 과세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렵다. 이 홈런볼이 주운 지 100년 이상 되어 골동품으로 취급된다면 모르되(골동품이 되면 매각대금의 2.2%가 과세된다) 그렇지 않으면 과세되지 않는다.
골동품이 안 된 홈런볼의 매각소득을 현행법이 과세대상으로 열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00호 홈런볼이 주운 사람에게는 머니볼이 되나 정부에게는 머니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과 갑자기 들이닥친 메르스 사태에 온 국민이 노심초사하는 이 때 이승엽선수의 400호홈런이 국민들에게 준 기쁨과 뭉클함 그리고 그의 인간승리를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랴. 필자 개인적으로도 이 칼럼의 소재거리를 찾느라 애를 먹고 있었던 차에 멋있는 소재를 제공해준 그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그의 또 다른 머니볼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