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정치현실 보여준 유승민 '찍어내기' 드라마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결국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25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며 사퇴 압박이 시작된 이래 13일만이며, 지난 2월2일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된 지 5개월 만이다.

의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원내대표에 대해 사퇴를 권고한 것은 정당 사상 초유의 일로서 새누리당 당헌, 당규에도 나와 있지 않다. 정당 스스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은 것이 구태정치의 행태로 사실상 정치적 '축출', '숙청'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유승민이 하고 싶었던 말 = 특히 유 원내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저의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역설하면서 정치적 축출을 당해야하는 억울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국민들에게 "참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은 것은 제가 끝내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법과 원칙, 정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해도 누군가는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했다"며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 사퇴 거부를 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유 원내대표가 "미련한 고집"을 피운 이유는 단순하다. 원내대표가 의원들의 신임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자리인 만큼 임기 중 사퇴를 하려면 다수 의원들의 자발적 사퇴 요구가 있어야만 물러날 명분이 생긴다는 민주적인 논리다.

'삼권분립'이 원칙인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낙인'찍어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유 원내대표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 1항을 내세운 것도 자신의 사퇴 문제가 반민주적 행태라는 것을 에둘러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박수'로 원내대표 쫓아낸 새누리 = 거부권 정국에서 보인 새누리당은 줄곧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여 왔다.

여야 과반 찬성으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입법부의 한 축인 여당은 대통령 뜻 받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특히 친박계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 사퇴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지난 달 25일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에 표결 불참을 결정하고
유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재신임' 하는 등 나름 절충점을 찾았음에도 친박계는 연일 막무가내로 사퇴를 종용했다.

이날 유 원내대표의 사퇴 권고도 새누리당은 의원들은 '표결'이 아닌 '박수'로 결정했다.

물론 그동안 여야 원내대표들 중 임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자진사퇴를 한 경우는 많다.

다만 대부분 여야 법안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당내 반발을 책임지는 차원이었다.

지난해 자리에서 물러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경우,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정에서 유족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두 차례나 의원들의 추인을 받지 못했다.

또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외부인사로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 위원을 영입하려고 하다가 당내 반발에 직면, 그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했다.

새누리당 역시 한나라당 시절 원내대표였던 강재섭 전 대표는 2005년 사학법 협상 문제에 대한 당내 반발로 9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재오 의원은 당 대표 출마를 이유로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경우다.

□ "박 대통령, 민주적 정치운영에 무능 보인 것…최종패자" = 당내 반민주적 절차와 야당의 반발로 인해 유 원내대표의 '사퇴' 이후 후폭풍 역시 만만찮을 전망이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유 원내대표 사퇴에 대해 "권위주의 대통령제로 정치퇴행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를 존중하고 이를 행정의 책임정치로 구현해야하는데 여전히 당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 대통령이 아무리 퇴행적이어도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기 힘들다. 이번엔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 결과는 대통령과 친박계들이 '최종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박 대통령은 민주적 대통령제 정치규범을 위반했고 본인 스스로 레임덕을 자초했다"며 "민주적 정치운영에 대한 무능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 관계자 역시 "이렇게 원내대표를 몰아내는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가 '보이콧' 해서 유 원내대표가 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유 원내대표가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떻게든 부작용이 있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