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일부 대기업들은 속이 영 편치 않는 모습이다. 정부가 대기업의 이월결손금 공제한도를 당해연도 소득금액의 80%로 설정하고 공제 뒤 남은 영업이익 20%에 대해 법인세(세율 22%)를 납부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5년 세법개정안'에 대해 재계는 총론 측면에서 환영의 뜻을 보내고 있지만 각론 측면에서는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차마 겉으로 쏟아낼 수는 없지만, 따지고 싶은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전언이다.
만성화 된 세수부족 현상과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세수확보가 정부의 최대 과제 중 하나가 되면서 대기업들이 소위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법인세 인상론은 물론 과도하게 편중된 투자관련 세금혜택 축소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어 정부도 어느 수준까지 '절충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은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이 절충점의 일환으로 이번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 '이월결손금 공제한도 설정'이다.
실제 지난 6일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는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가 '이월결손금 공제한도 설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는 후문.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재계가 이 제도 도입을 대놓고 반대하기는 힘든 형편이라는 전언이다.
이에 제도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 대기업들은 남몰래(?) 속을 끓이고 있는 형국이다.
□ '이월결손금 공제'란? = 이월결손금 공제는 기업이 최장 10년 이내에 결손금이 있을 경우, 이를 현재의 이익과 상계해 납부할 세금(법인세)에서 공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적자를 보전하지 못해 기업들이 부실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특정 사업연도 적자를 냈다가 흑자로 전환되더라도 이월결손금 공제를 활용해 법인세액을 줄이거나 납부하지 않는 등 과거 손실분을 흑자가 나는 해에 벌충해 왔다.
예를들어 A기업이 2012년 20억원의 적자를 내고 2013년과 2014년 각 10억원의 흑자를 냈다면 이 기업은 흑자를 냈더라도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됐다. 20억원의 적자를 2013년과 2014년에 분산해 결손처리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각에서는 기업에 과도한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월결손금 공제한도를 두고 있으며 이 중 일본은 공제한도를 65%로 설정한 것에 비해 100%를 허용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과도한 세제혜택이라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일반기업의 이월결손금 공제한도를 당해연도 소득금액의 80%로 설정하고 공제 뒤 남은 영업이익 20%에 대해 법인세(세율 22%)를 납부하도록 하는 내용을 이번 세법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중소기업은 공제한도 적용대상에서 원천 배제됐으며 부실한 재무상태로 당장이라도 무너질 위기에 처한 기업(▲법원결정에 의해 회생계획을 이행 ▲구조조정촉진법상 경영정상화계획 이행 ▲채권금융사와 협약에 따른 경영정상화계획 이행)도 적용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 "적자에 장사없는데"…울상짓는 대기업들 =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방향(이월결손금 공제한도 설정)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왜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대해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냐는 것이다.
규모나 재무상태 측면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상대적으로 튼튼한 것은 맞지만 적자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소기업이든 상관없이 경영에 타격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불만에는 아랑곳 없이 정부는 이월결손금 공제한도 설정 여부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는 기업들의 세부담은 같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A기업이 2012년 20억원의 적자가 발생한 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10억원의 흑자를 냈다면 현재는 2013년, 2014년 결손처리를 하면 되지만 공제한도 설정 이후에는 2013년 8억원, 2014년 8억원, 2015년 4억원의 결손처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공제기간이 10년이기 때문에, 특정 사업연도에 발생한 적자를 (공제한도 적용으로 인해)시간이 걸릴 뿐, 결국에는 모두 털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최종적인 세부담은 같더라도 공제한도를 초과한 부분에 대한 법인세를 납부한 뒤 추후 공제를 받는 등 불편함이 발생한다는 불평도 나온다. 특히 수년에 걸쳐 적자를 낸다거나 흑자를 냈더라도 결손금을 털어낼 만큼 충분히 나지 않았을 경우, 종국에는 공제받지 못한 부분이 생기는 등 공제한도가 기업 입장에서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기업 일각에서는 공제한도 설정을 하려면 공제기간을 현재보다 조금 더 늘려주는 보완책도 함께 추진해야 이월결손금 공제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의견도 나온다(이월결손금 공제기간 조정 : 2008년 이전 5년, 2009년 이후 10년).
한 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금전적인 여력이 있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에 대기업들이 세금 더 내라는 소리밖에 안된다. 대기업이라도 적자규모가 큰(결손이 많은) 기업은 여력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적자가 났으니 세금을 무작정 안내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공제한도를 설정해 버리면 흑자 내는 기업들은 몰라도 이월결손금 공제를 받으며 손실을 메꾸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크든 작든 힘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이월결손금 공제한도 도입으로 대규모 적자를 낸 기업이 회생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이익이 많이 난 기업들의 세부담을 늘리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어려운 회사에 부담을 지운다는 발상은 기업 입장에서 너무 야박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