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하라더니…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 정부가 R&D 설비 투자세액공제 등을 축소하면서 기업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면서 정작 투자세액공제는 축소하는 정부의 모습에 기업들은 '투자 심리'가 위축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15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정부가 목표한 것은 '경제활력 회복'이다. 경제의 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지원하고 움추러든 소비심리를 일깨우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 특히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뜯어본 기업들은 달갑지 않은 반응 일색이다. 경제활력 회복을 노리는 정부가 '이율배반적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할 것을 요구하며 기업들을 채찍질하면서 정작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투자 관련 세제혜택을 축소, 기업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 "투자하라면서…세금지원 축소, 왜?" = 계속되는 세수결손에 대한 해결방안을 안팎으로 요구받고 있는 정부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경제활성화'를 내세우고 있다. 위축된 소비심리를 깨워 시장을 살리면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 투자와 고용을 늘리게 되고 그만큼 세수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에도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체크카드와 현금영수증 소득공제 추가공제율을 높이고 냉장고 등 대형가전의 개별소비세를 폐지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았지만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우려가 큰 제도개편 방안을 포함시켰다.
현행 대기업 3%, 중견기업 5%, 중소기업 10% 등으로 적용되고 있는 연구·개발(R&D) 설비·에너지절약시설 투자세액공제율을 내년부터 각각 1%, 3%, 6%로 낮추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현행 대기업 3%, 중견기업 5%, 중소기업 7%가 적용되고 있는 생산성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도 내년 각각 1%, 3%, 6%로 인하하기로 했다.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공제율까지 축소하면서 기업들의 입이 나올대로 나온 상황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비과세·감면제도 축소 기조에 따라 어느 정도의 제도 정비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경제활력 회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투자와 관련한 세제지원을 대폭적으로 축소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R&D 설비·에너지절약시설 투자세액공제 등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한 '자발적 성격'의 투자이기 때문에 공제율의 높낮이와는 상관없이 기업들이 투자를 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논리로 제도 개편의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뿔' 났다 = 이월결손금 공제한도 설정의 경우 대기업, 특히 상당기간 동안 적지 않은 수준의 적자를 낸 기업이 타게팅됐다는 측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한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뜩이나 법인세 인상 주장으로 여론이 시끄러운 이 때, 드러내놓고 이월결손금 공제한도 설정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가 그 불똥이 어디로 튈 지 모르기 때문에 대기업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더라도 대놓고 왈가왈부하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R&D 설비·에너지절약시설, 생산성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의 경우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공제율까지 크게 낮추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발표되면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까지도 덩달아 불만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는 "투자가 위축될까 우려스럽다"는 공식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기업들은 투자세액공제의 공제요건이 까다로워 실제로 공제받기 힘든 항목이지만 그나마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해준다는 '심리적 효과'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중견기업의 한 관계자는 "투자활성화 때문에 만든 제도를 축소한다고 하면 기업들은 당연히 반발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이 세제지원의 유무다. 실제 영향 유무를 떠나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도 "설비투자의 경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투자가 대부분이다. 자발적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비자발적 투자는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결국 세금 몇 푼 더 받아 내겠다는 정부의 심산이 반영된 세법개정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들의 투자가 절실한 시점 아닌가. 어떤 형태로든 투자와 관련한 세제지원의 정비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난해 세법개정 당시 대기업 공제율이 10%였지만 이를 3%로 줄이더니 이제는 1%로 줄였다. 공제율을 축소하는 속도가 너무 급격하다. 사실상 (대기업에 대해서는)제도를 폐지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정치이념적으로 세제정책 수정여부를 판단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제한 뒤 "비과세·감면 축소 기조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지만 투자세액공제는 경우가 다르다. 기업들 입장을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통행식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