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욕망의 용광로, 서울 용산 화상 경마장 = 외부에서 봤을 때는 이곳이 화상경마장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깔끔한 건물이다. 건물입구에는 주민들이 교육환경과 주거 환경을 지켜 내겠다며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야야 빨리! 나가! 나가!"
"좋아! 잘한다! 조금만 더 달려!"
트랙을 질주하는 말들의 모습을 화상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는 사람들이 탄식과 환호, 욕설을 연이어 쏟아냈다.
레이스가 끝나자 일부는 묘한 미소를, 일부는 갖고 있던 펜을 집어던지거나 마권을 갈기갈기 찢으며 격한 감정을 토해냈다.
가랑비가 살며시 내리던 8월의 어느 주말, 서울 용산 화상 경마장을 찾은 이들의 뜨거운 열기는 차분한 지역 분위기와 대조되며 묘한 '이질감'을 자아냈다.
한국마사회의 주도로 인근 학교와 불과 215m 떨어진 곳에 설치된 이곳 화상 경마장은 시작부터 '말썽'이었다.
주거와 교육환경 등을 해친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의 결사적인 반대가 있었지만, 설치가 강행됐고 올해 초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용산 화상 경마장 입구 인근에는 화상 경마장 폐쇄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천막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한 주민은 입구 앞에 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이곳은 도박장입니다"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있는, 담배 연기 자욱한 도박장을 연상하며 화상 경마장 입구로 들어갔지만 내부는 예상과 달리 깔끔했다.
건물 1층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앞에는 깔끔한 유니폼을 차려입은 직원들이 손님들을 맞이했다.
입장권은 2만원권, 3만원권 두 종류로 판매되고 있었다.
카드결제는 되지 않고 무조건(?) 현금박치기.
바로 옆 부스에서는 경마 전문지들이 진열 되어 있었고 선호에 맞게 골라서 가져갈 수 있었다.
직원들이 친절하게 잡아준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으로 올라가자 도박장이라는 생각이 확 달아날 정도로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지정좌석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각자의 자리에서 편하게 대형 모니터를 통해 경기를 관람하는 방식이다. 한쪽에는 카페테리아가 위치해 음료와 도시락을 각자의 자리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별도로 구매할 필요는 없고 2만원 입장권 가격에 경마지, 도시락, 음료값이 모두 포함된 것이었다.
과천에 소재한 경마공원과 마찬가지로 이색 데이트를 즐기려는 커플이나 가족 단위의 이용객이 혹시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금새 달아났다. 온통 편한 차림의 중년 남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불안감인지 기대감인지 알수 없는 그들의 표정이, 잠시 잊을 뻔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래, 여기는 도박장이지.'
경기 시작 전 5분 전이라는 방송이 나오자 이용객들은 서둘러 자동발매기에서 마권을 구입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자 말들이 앞다투어 출발했다. 그렇게 길지 않은 레이스가 펼쳐지자 사람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용객들은 경기 초반 차분히 화면을 응시하다가 말들이 결승선에 다가올 수록 고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말들이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긴박한 상황이 오면 "달려라, 달려라, 더 달려라" "잘한다!" "어어, 안돼!" 등의 소리가 섞이며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말들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일부 관객은 두 팔을 들며 환호했고 다른 관객은 아쉬운 탄식을 토해내며 흡연실로 향했다.
기자에게 배팅방법을 가르쳐 준 중년의 한 이용객은 "첫 배팅에 용케 맞췄네. 축하한다. 그렇지만 엄연히 도박이니까 조금만 하다가 돌아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어 "젊은 친구가 여기에는 왜 왔나?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왔나? 여기는 올 곳이 못 된다"며 "이번에는 왔으니까 경험 삼아 해보고 다음부터는 오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 오래 있을 생각도 없었지만 달랑(?) 1시간만에 이곳이 어디이며, 어떤 분위기이며, 또 어떤 인간군상들이 몰리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다시 가랑비가 내리는 거리로 나섰다.
출입구 밖으로 나오자 경찰 기동대 차량들이 많이 와 있었다. 주민들은 아직도 반대운동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 근처에는 '마사회는 평가단 꼼수 부리지 말고 화상 경마도박장 철수하라', '도박장 없는 안전한 마을 용산구 주민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보였다.
한 주민은 "용산 화상 경마장은 레저시설이 아닌 분명한 도박장이다"며 "습관적인 도박으로 인한 가정불화와 학교 근처 유흥업소 난립으로 인한 교육환경 파괴가 야기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민들의 여론 때문이었을까. 용산 화상 경마장 주변에는 유니폼을 입은 마사회 직원들이 2인1조로 길을 걸으며 집게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대로변 건너편에도 다른 마사회 직원들이 똑같이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또 건물 옆 횡단보도 앞에는 두 명의 직원이 교통안내를 하고 있었다.
마사회는 용산 화상 경마장 일부 층에서 주민들을 위한 요가, 영어교실, 한국무용 등의 강좌을 개설해 무료로 운영하고 있기도 했다.
◆…포기할 수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화상경마장 = 마사회 총 매출액 중 장외발매소인 전국 30개 화상경마장의 매출은 최근 5년간 7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장외발매소의 매출은 전국 3개의 본장인 서울, 제주, 부산경남의 매출을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사회가 이토록 용산 화상 경마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마사회로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수익사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마사회 매출액 7조6464억원 중 71.77%인 5조4879억원이 전국 30개 지역에 설치된 화상 경마장에서 뿜어져 나왔다.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조용하던 동네에 갑자기 불어 닥친 '도박바람'을 걱정하는 주민들과 마사회는 지금도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화상 경마장 설치를 허가한 정부는 이 분쟁에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 마사회와 주민들이 해결할 문제인데다, 정부 입장에서는 큰 세수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사회와 정부는 최근 용산 화상 경마장 건물에 국가예산을 투입, 문화공간 조성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가뜩이나 불만이 팽배해 있는 주민들의 감정선에 또 하나의 불덩이를 던져 놓았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을 받아(12억원) 비어 있는 화상 경마장 건물 1~7층을 활용, 키즈카페 등 복합문화공간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도박장이 입주한 건물에 아이들이 드나드는 시설을 입주시킨다는 발상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고삐가 풀린(?) 마사회는 주민들과 용산구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존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있으며 예산지원을 결정한 미래창조과학부는 '경마장 건물인지 몰랐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해명을 내놓아 논란을 일으켰다가 최근 예산 지원 결정을 철회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진영 의원(서울 용산)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3일 열린 '디지털콘텐츠 동반성장 지원 사업' 중간평가 결과를 근거로 지급하기로 한 지원금을 취소키로 결정했다"며 "지금까지 미래부가 마사회에 일시금으로 지급한 지원금은 아직 없고 이번 결정으로 지원금 지급 결정을 철회한 것"이라고 밝혔다.
화상 경마장 둘러싼 시민단체-마사회 '세금논쟁'
한편 시민단체(참여연대)는 최근 마사회의 화상 경마장을 통한 '탈세 의혹'을 제기하며 마사회에 대한 '압박' 강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참여연대는 마사회가 각기 다른 가격의 화상 경마장 입장권에 동일한 부가가치세를 받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고, 국세청에 마사회를 탈세 혐의로 고발했다.
여러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자 마사회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 탈세는 사실이 아니며 그동안 부가세를 성실히 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참여연대 측은 이 건에 대한 국세청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마사회는 참여연대 측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