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크라티온. 기원전 648년 제33회 고대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격투기다. 권투와 레슬링을 합친 맨손 격투기로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경기가 진행됐다. 마케도니아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보스 2세도 판크라티온 선수였다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판크라티온과 비슷한 격투기가 요즘 젊은이들의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의 UFC로 대표되는 종합격투기(mixed martial arts)가 바로 그것. 옥타곤이라 불리는 8각철조망 링 위에서 펼쳐지고 링 바닥에 누워 기술을 펼치는 ‘그라운드’도 허용된다. 타격(打擊) 외에 관절도 꺾을 수 있다. 그만큼 격렬하고 위험하다.
링 위의 전사 둘 중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죽도록 패는 것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가 보다. 그러나 덮어놓고 때리고 싸우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거기에도 분명 규칙은 있다.
판크라티온의 규칙은 단순하다. 물어뜯기와 눈찌르기만 반칙이다. UFC규칙은 무척 엄하다. 무려 31가지 해서는 안될 반칙행위를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열거하고 있다. 뒤통수 치기, 박치기, 눈찌르기, 물어뜯기, 급소치기와 넘어져 있는 상대 머리를 발이나 무릎으로 차는 행위가 대표적 반칙이다. 다만, 파울로 열거되지 않은 행위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니, 나름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갖춘 셈이다.
“행위나 거래의 명칭·형식·목적과 관계없이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무형 재산을 직·간접적 방법으로 타인에게 무상(현저히 저렴한 대가 포함) 이전하거나 기여에 의해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 의 증여 포괄정의조항이다. 세금 없는 부의 세습을 막겠다는 명분 아래에 어지간한 것은 증여로 보아 증여세를 매긴다는 포괄주의를 천명한 것이다.
이 포괄주의조항이 없었던 시절에는 민법상 증여와 상증법이 증여로 본다고 하거나 증여로 추정한 행위에만 증여세가 과세됐다. 열거주의를 채택함으로써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그랬던 것이 증여세 포괄주의가 대원칙으로 자리잡으면서 상증법의 개별조항에 증여로 규정된 행위들은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는 예(例)에 지나지 않게 됐다. 상증법에 예시된 것 외의 행위도 이 포괄정의조항에 걸리면 과세된다는 것.
예컨대, 포괄주의 도입 당시 상증법은 아버지가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적자법인에 증여한 경우, 아들이 증여 받은 것으로 봤다. 적자법인이니 수증하더라도 법인세는 안 내나, 그만큼 아들 주식의 가치가 커졌으니 아들에게 증여세를 매긴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버지가 아들의 흑자법인에 증여한 때다. 이 때도 아들 주식의 가치가 커짐은 물론이다. 적자, 흑자만 다를 뿐 기왕 예시된 것과 흡사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타인의 기여에 의해 재산가치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증여포괄정의에 포섭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증여세를 매기려는 과세당국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반면 납세자는 적자법인에 증여한 경우에 증여세를 매긴다고 했지 않느냐며 항변한다. 아버지가 흑자법인에 돈을 증여할 때 법인세를 내야 하고 아들은 아들대로 증여세를 냄과 아울러 배당받을 때 배당소득세까지도 물려야 하는 삼중과세의 위험에 처했으니 펄쩍 뛸만하다. 야구로 치자면 ‘삼중살(triple play)’을 당한 꼴이다.
정부 역시 이 점을 의식, 결손법인과 지배주주가 50%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영리흑자법인을 통하여 증여된 경우에만 이들 법인의 주주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쪽으로 세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정부의 전향적 자세가 사뭇 돋보이는 대목이다.
